[내가 사랑한 그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편지를 쓰는 여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75), <편지를 쓰는 여인>,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45 x 39.9 cm, 워싱턴 국립미술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알 수 없는 깊은 매력이 있다. 다분히 일상적인 장면에 깃든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는 보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화면의 중앙에 진주 귀걸이를 하고 노란색 재킷을 입은 한 여인이 탁자 앞에 앉아 있다. 여인은 오른손에 거위 깃털로 만든 펜을 쥐고 있는데 잠시 쓰는 것을 멈추고 미묘한 표정으로 정면을 뚜렷이 응시하고 있다. 화면의 위, 아래쪽은 어둡고 정중앙에만 빛이 들어와 여인의 섬세한 얼굴과 차분한 눈빛이 더욱 도드라진다. 여인은 누구이며, 무엇을 쓰고 있고, 왜 시선은 관객을 향해 있을까.

페르메이르는 여러 작품에서 여인을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처럼 여인의 얼굴이 정중앙에 위치해 화면을 지배하는 구성은 매우 색다르다. 다른 작품에서는 내가 그림 속의 여인을 관찰한다면 이 그림은 여인이 나를 보고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다. 그녀의 표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알듯 모를 듯한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 그녀는 누구일까.

페르메이르의 인생처럼 그의 작품도 미스테리하다. 여러 비평가들이 화가의 아내 또는 딸이 실제 그림 속 여인의 모델이었을거라 추측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여인이 입고 있는 흰털이 장식된 노란색 재킷은 페르메이르 사후(死後) 작성된 집안 물품 목록에서 확인되는데, 화가의 여러 다른 작품 속에서도 똑같은 상의를 입고 있는 여인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동일한 인물인지 확실치 않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연애편지>, 1669-70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내가 페르메이르의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인의 펜을 든 모습 때문이다. 그녀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편지였으리라. 편지를 쓰거나 읽는 여인은 페르메이르가 활동했던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주제였다.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 <편지 쓰는 여인>, 1655년경,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개인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에 속했던 지적 행위가 유럽에서 17세기에 들어 여성에게도 널리 허용되었다. 당시 네덜란드 여성의 문자 해독력은 다른 유럽 국가 여성들에 비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여성은 소수였다. 글을 짓다는 것은 나를 밖으로 표현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이므로 그림 속 여인은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여인은 어떤 내용의 편지를 쓰고 있던 것일까. 정답은 없지만 추론은 가능하다. 뒷벽에 걸린 정물화 그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비올(16-17세기에 주로 쓰였던 현악기)이 편지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서양회화에서 악기는 종종 사랑을 이야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림 속 여인은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 여인. 특별할 것 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동시대에 활동한 여느 화가들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작품과 분명 다르다. 그 다름은 바로 페르메이르가 편지를 쓰는 행위가 아닌 행위의 주체인 여인의 개인성을 강조한 데에 있다. 우리는 어떤 여인이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는게 아니라 편지를 쓰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여인을 보는 것이다. 비록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 그림은 풍속화가 아닌 한 여인의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여인의 정면을 향한 포즈와 차분하지만 대담한 시선에서는 당당함과 자존감이 느껴진다. 편지를 쓰는 한 여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작은 크기의 그림이지만 조용하면서 강한 에너지가 풍기는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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