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록 리뷰]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들 – 해상 실크로드의 비밀’ 난파선이 전하는 세계사

전시기간: 2019. 09. 07 – 2020. 06. 28 (08. 30까지 연장)
전시장소: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레이우아르던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이하 도자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들 – 해상 실크로드의 비밀 Gezonken Schatten: geheimen van de Maritieme Zijderoute’은 올해 꼭 보고 싶은 전시였다. 하지만 코로나19때문에 봄에 계획한 네덜란드 여행은 수포로 돌아가고, 아쉬운 마음에 최근 도록을 주문해 받아 보았다. 

Gezonken Schatten = Sunken Treasures / Karin Gaillard; Eline van den Berg / Zwolle: Waanders & De Kunst / 2019 / 160 pages. © HEEstoryNArt

전시는 9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침몰한 일곱 척의 난파선 – 당(830) / 신안(1323) / 산디에고(1600) / 비트 레이우(1613) / 해처(1643) / 헬데르말선(1752) / 텍싱(1822) – 에서 발견된 도자기 및 각종 유물을 선보인다.

개개의 난파선에 대한 전시는 종종 있어 왔지만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난파선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전 세계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당 난파선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선 출토 유물이 유럽에 첫선을 보여 더욱 의미가 있는 전시다. 

전시를 직접 보지 않아 그 규모와 내용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지만, 영상과 사진을 통해 본 전시실과 전시품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 충분해 보인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들’ 특별전시실 전경. 출처: studiolouter.nl

1602년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한 네덜란드는 유럽의 대(對)아시아 무역을 선점하며 해상 실크로드(Maritime Silk Road)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이 활동하기 이전에도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국제 무역과 교류는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바닷속에 침몰된 배와 그곳에서 건져낸 유물은 이를 증명하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다.

9세기 당 난파선과 14세기 신안선은 유럽인이 해상 실크로드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아랍인과 아시아인의 주도로 번성했던 해상 교역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들 침몰선은 비극적인 항해의 최후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셀 수 없이 많은 배들이 해상 실크로드를 왕래하다가 좌초되었고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난파선은 오랜 세월 동안 부식되고 파손되었으며 배에 실렸던 물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차, 향신료, 비단과 같은 상품은 배의 침몰과 함께 거의 다 사라졌다. 그러나 도자기는 살아남았다. 깊은 바닷속에 묻혀 있던 도자기는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수중발굴된 유물 가운데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도자박물관장인 크리스 칼렌스(Kris Callens)는 도록의 머리말에서 이번 전시의 목적은 일곱 난파선을 중심으로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펼쳐진 (도자기) 무역에 대해 거시적으로 조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와 네덜란드에서의 해양고고학 발달 상황 및 연관된 윤리적 이슈를 논해 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특별전와 함께 출판된 도록은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되어 있다. 도록 전체가 2개 국어로 쓰여진 경우는 드문데 전시의 중요성과 국제적인 독자층을 고려한 박물관의 결정일 것이다. 도록은 160쪽의 비교적 짧은 분량이며 최소한의 각주를 사용해 전문가보다는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도록은 전시를 기획한 도자박물관 학예사 엘리너 판 덴 베르흐(Eline van den Berg)의 소개글로 시작한다. 짧은 글이지만 해상 실크로드에서 서로 다른 배경의 일곱 난파선이 갖는 역사·고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세계사의 흐름에서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뒤이어 도록에는 일곱 척의 난파선에 대한 개별 글(여섯 편)이 침몰한 연대 순으로 실려 있다. 당 난파선과 신안선 관련 글은 해당 박물관 학예사가 집필하였으며, 그외 글들은 도자박물관 학예사와 네덜란드 내 전문가가 썼다.

다음은 각 난파선에 대한 글의 간단한 요약이다.

당(Tang, 830)

벨리퉁(Belitung) 난파선이라고도 알려진 당 난파선은 9세기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을 잇는 국제 해상교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실증적인 예다. 약 1200년 전 중국 당나라(618-907)에서 아바시드 제국(750-1258, 현재 이란과 이라크)으로 항해 중 인도네시아 자바해 벨리퉁섬 해역에서 침몰한 배는 중국 화물을 잔뜩 실은 아랍 무역선이었다. 이후 1998년에 발견된 난파선에는 6만여점의 중국 도자기와 금은 세공품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당 난파선에서 대량의 중국 남부 장사요(長沙窯) 도기 대접이 발견되었다. © Michael Flecker

2005년 싱가포르 정부는 난파선을 인양한 회사로부터 대부분의 유물을 구입하여 2015년부터 아시아문명박물관 ‘당 난파선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상업적으로 발굴된 유물이지만 침몰된 선박의 화물 거의 전체가 단일 컬렉션으로 남아있는 매우 드문 경우다.

신안(Sinan, 1323)

신안선은 원나라 무역선으로 1323년 중국 경원(慶元, 현재 저장성 닝보)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향하던 도중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1975년 어부의 그물에 청자화병이 걸려 나오면서 시작된 발굴조사를 통해 이듬해부터 1984년까지 22,000여점의 도자기와 28톤에 이르는 동전, 자단목, 금속 공예품 등을 찾아냈다. 이외에도 난파선에서는 화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는 360여점의 목간 및 선원들의 생활용품들도 발견되었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목간을 통해 화물주와 목적지, 수량 등을 알 수 있다. 화물의 대부분은 일본 사찰과 관련이 깊다. 1323년, 국립중앙박물관

신안선에서 발견된 유물은 14세기 동아시아 해상교역과 문화교류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신안선 발굴은 한국 수중고고학의 효시를 알린 대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산디에고(San Diego, 1600)

1500년경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유럽과 아시아 간 무역의 첫 시작을 열었다. 특히 필리핀을 본거지로 삼은 스페인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잇는 태평양 항로를 통한 중계 무역, 이른바 ‘갈레온 무역’을 독점하여 큰 이익을 남겼다. 

산디에고 난파선은 필리핀에서 건조된 선박으로 마닐라와 멕시코의 아카풀코 사이를 왕래하는 마닐라 갈레온(Manila Galleon) 무역선이었다. 이후 스페인 해군함으로 변신한 산디에고호는 1600년 12월 필리핀의 포춘섬 근처에서 네덜란드 군함 마우리티우스(Mauritius)호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네덜란드 군함 마우리티우스호의 공격으로 산디에고호가 바닷속에 침몰하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1600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1990년대 초 발견된 난파선에서는 34,0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인양되었다. 각종 무기와 함께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산지의 다양한 무역상품 및 생활용품이 포함되어 당시 스페인인들이 주도한 환태평양 무역의 실체를 가늠해 보게 한다.

비트 레이우(Witte Leeuw, 1613)

비트 레이우는 1613년 남 대서양 세인트헬레나섬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초창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소속 무역선이다. 1610년 암스테르담에서 건조된 후 인도네시아 반텐으로 보내진 배는 3년 동안 아시아에서 다양한 상업적・군사적 활동을 수행하다가 1613년 무역품을 잔뜩 실고 네덜란드로 되돌아오는 중 만난 포르투갈 선박을 공격하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1976년에 발견된 난파선에는 중국 도자기가 가득 실려 있었는데, 그중 청화자기의 일종인 크라크자기(kraak pocelain)의 수량이 압도적이다. 또한 진귀한 조개껍데기를 비롯한 화식조의 알, 희귀식물과 열매 등 이국적인 물건도 많이 발견되어 해외무역 확대와 함께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에 분 수집 열풍을 살펴볼 수 있다.

비트 레이우 난파선에서 발견된 크라크자기. 17세기 초,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해처(Hatcher, 1643) – 헬데르말선(Geldermalsen, 1752)

보물을 실은 난파선은 민간 잠수회사에게 매력적인 표적이 아닐 수 없다. 1643년경, 중국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아시아 본거지인 바타비아(Batavia, 현재 자카르타)로 향하던 중 인도네시아 리아우제도 해역에서 사라진 중국 정크선, 소위 해처호는 마이클 해처(Michael Hatcher)라는 영국 출신 보물선 사냥꾼이 1983년 남중국해에서 찾아낸 난파선으로, 배에서 건져낸 25,000점 이상의 도자기가 경매에 부쳐져 논란을 일으켰다. 

해처 난파선에서 출토된 청화자기로 만든 차 주전자. 1643년경,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1751년 해처호가 침몰한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좌초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헬데르말선호도 마이클 해처가 발견한 선박이다. 문헌에 따르면 중국 광저우(廣州)를 출발 네덜란드로 항해 중이던 헬데르말선호는 15만점이 넘는 중국 자기를 비롯해 대량의 차, 비단, 금 등의 사치품을 싣고 있었다. 18세기 중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대(對)중국 무역에 대한 실체를 보여주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배이지만, 상업적인 발굴로 난파선의 고고학적 정보는 사라지고 인양된 유물 대다수는 경매로 팔려 전 세계로 흩어졌다. 해처와 헬데르말선 난파선 유물 경매는 네덜란드에서 수중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관련 법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6년 암스테르담 크리스티 경매회사에 전시된 헬데르말선 난파선에서 인양된 도자기. 당시 ‘남경 화물(The Nanking Cargo)’이라는 이름으로 경매 도록이 출판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텍싱(Tek Sing, 1822)

1822년 1월 14일, 승객 2천여명과 무역품을 잔뜩 싣고 바타비아로 향하던 텍싱호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샤먼(廈門)에서 출항한지 24일 만에 인도네시아 가스파르 해협을 통과하다 좌초되어 침몰했다. 당시 그 일대를 지나던 인디아나(Indiana)호 영국 선장(James Pearl)의 항해일지에 따르면 기상 악화로 일부(150명)만 구조되고 거의 전원이 익사했다. 대다수의 승객들은 바타비아로 떠나는 중국 이민자들로서 새로운 곳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던 이들이었다. 

1999년 마이클 해처가 찾아낸 텍싱호 잔해에서는 36만점의 도자기가 인양되었다. 이는 난파선에서 발견된 도자기 중 제일 큰 규모이지만 실제 텍싱호에 실려 있던 도자기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대부분 동남아시아에 사는 중국인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로서 19세기 초 아시아에서의 중국 도자기 무역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듬해 텍싱호는 ‘동양의 타이타닉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난파선에서 건져낸 유물은 경매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텍싱 난파선에서 건져낸 중국 푸젠성에서 생산된 청화자기. 1822년경, 개인 소장(Anton van der Weide)

해양고고학(Maritime Archaeology)

도록에는 난파선 관련 글과 함께 해양고고학과 수중발굴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짚어보는 글 한 편이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 수중고고학자 마르테인 만데르스(Martijn Manders)가 쓴 글은 이번 전시와 도록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3백만 척에 이르는 난파선들이 해저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추정일 뿐 실제는 더 많은 난파선들이 있을 것이다. 

수중고고학자는 난파선에서 찾아낸 유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분석해 해양사를 복원한다. 때문에 유물 발굴에 앞서 유물이 발견된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고고학적인 맥락은 개개의 유물만이 아니라 유물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토대가 되므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발굴하는 수중고고학자들과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난파선을 찾는, 이른바 보물선 사냥꾼들에게는 빠른 시간 내에 돈이 되는 물건을 건져 올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선체와 같은 유물은 뒷전이 되며, 앞서 소개한 난파선들과 같이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이 파괴되는 일도 빈번하다. 이럴 경우 인양된 개개의 유물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 얻을 수 있을 뿐, 난파선이라는 유적과 전체로서의 화물 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최근 네덜란드와 영국 정부의 협력으로 발굴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루스베이크(Rooswijk, 1740년 침몰) 난파선. 잠수부가 청화자기 조각을 손에 든채 수중 리프트를 타고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출처: princessehof.nl

2001년 유네스코 협약으로 마침내 고대 침몰선을 비롯한 수중문화유산의 관리와 보호를 위한 일련의 포괄적인 법률체제가 갖추어졌다. 발굴 이전에 발견된 유적을 현상 보존하고 인양된 유물의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수중유산을 보호하며 수중고고학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법적인 발굴과 유물 밀매 활동은 근절되고 않고 있다. 필자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발굴조사와 연구, 그리고 긴밀한 국제협력만이 인류의 소중한 수중유산을 지켜낼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도록총평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곱 난파선을 하나의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도록으로만 접한 전시는 그래서 더욱 아쉽다. 전시와 도록은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전개 방식은 다른 경우가 많다. 도록은 전시보다 각 난파선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으나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아마도 전시는 그 반대일 것이다. 

또한 난파선마다 집필자가 다르다보니 내용에 편차가 좀 있는 편이다. 특히 기대했던 신안선은 다른 난파선을 다룬 글들과는 다르게 신안선 자체보다 인양된 개개의 유물에 집중되어 아쉬움이 있다. 세계해양사라는 큰 틀에서 중세 중국(넓게는 동양)의 원양해선으로서 신안선이 갖는 위치와 의의를 강조하고, 발굴과 인양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으면 더욱 흥미롭지 않았을까. 당시로서는 드물게 정부가 주도한 고고학적 발굴인데다가 선체가 인양되어 유물과 함께 거의 완전체로 공공기관에 보존되어 있는 ‘특별한 난파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적인 규모와 거시적인 관점으로 난파선을 조명한 전시는 앞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보기 힘들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쳐 안타깝지만 도록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랄까.

[에필로그]

지난 8월 말, 파리에서 장장 6시간 기차를 타고 레이우아르던에 도착한 나는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을 찾아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들’ 특별전을 관람했다. 역시 전시는 직접 가서 봐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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