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프랑스적인, 너무나 프랑스적인 – 세브르 자기 ‘베소아맛’

<포푸리 ‘베소아맛’>, 1760년경, 연질자기, 프랑스 세브르, 높이 37 cm; 최대너비 35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누군가 나에게 가장 프랑스적인 미술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세브르(Sèvres) 자기 ‘베소아맛(vaisseau à mât)’을 보라고 말하겠다. 화려하고 경쾌하지만 우아하고 정교한. 세브르의 ‘베소아맛’은 프랑스적 요소를 가득 담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이는 프랑스에서만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세브르의 ‘베소아맛’ 기형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세 시대 이래 왕과 귀족들의 식탁을 장식하던 돛을 단 범선 모양의 금은 세공품을 연상시키는 형태는, 그러나 18세기 세브르만의 독자적인 예술성과 기술력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루이 15세(Louis XV, 재위 1715-74)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 1721-64)의 소장품으로 더욱 유명하다.

세브르의 ‘베소아맛’과 비슷한 형태의 중세 금세공품이 베리 공작의 새해 연회 식탁 맨 오르쪽에 놓여 있다.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1413-16년, 프랑스 콩데 박물관

루브르 ‘베소아맛’은 1760년 퐁파두르 부인이 그녀의 파리 저택(현재 프랑스 대통령 공식 관저로 사용되는 엘리제 궁) 침실방 벽난로를 장식하기 위해 구입한 것으로 포푸리(pot-pourri)라고 하는 향(香) 항아리다. 포푸리는 꽃과 식물, 과일 껍질, 향료 등을 잘 배합해 용기 속에 넣어 실내를 향기롭게 하는데 쓰였던 도구로, 18세기 프랑스와 유럽의 귀부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아이템이었다.

왕의 금은세공사였던 장 클로드 뒤플레시스(Jean Claude Duplessis, 1695-1774경)가 디자인한 ‘베소아맛’은 당시 유행한 로코코(Rococo) 양식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이다.

세브르 ‘베소아맛’ 측면 모습

몸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아랫부분은 S자 모양의 곡선을 그리는 네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받침대가 둥근 선체(船體) 모양의 항아리를 떠받들고 있고, 양끝은 돛대를 입에 문 사자 머리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윗부분은 투각장식이 된 뚜껑으로, 우아하고 매혹적인 곡선을 연출하며 범선의 돛을 형상화하고 있다. 뚜껑의 꼭대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휘감아 내려오는 깃발은 세브르 자기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베소아맛’ 동체(胴體)와 뚜껑

항아리의 몸체, 특히 뚜껑에는 무수하게 작고 정교한 구멍을 뚫어 그 사이로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오도록 디자인되었다. 기면을 뚫는 투각장식은 용기의 전체 구조를 약화시켜 번조 시 잘 터져버리는 단점이 있는데, 이런 제작과정의 어려움과 값비싼 가격으로 오직 열두 점의 ‘베소아맛’이 세브르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루브르 소장품을 포함해 총 열 점만이 전해진다.

‘베소아맛’의 독특한 형태만큼 놀라운 것은 참신하고 감각적인 색채의 사용이다. 작품을 지배하는 밝은 분홍색은 가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로즈 퐁파두르(Rose Pompadour)’라 불리는 세브르의 이 독창적인 분홍색은 세브르 자기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분홍색을 유난히 좋아했던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색이다.

퐁파두르 부인. 그녀는 단순한 왕의 정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루이 15세의 오랜 친구이자 조언자였으며, 빼어난 지적 소양을 갖춘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 후원자였다. 특히 퐁파두르 부인은 세브르 도자기제작소의 설립과 발전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1756년 뱅센에 있던 공방을 그녀의 저택(château de Bellevue)과 가까운 세브르로 이전시키고 1759년 왕립도자기제작소로 격상시키는데 힘썼다. 루이 15세와 퐁파두르 부인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세브르는 ‘베소아맛’과 같은 걸작을 만들며 유럽 최고의 도자기제작소로 거듭나게 된다.

루이 15세의 정부이자 세브르 도자기제작소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 프랑수아 위베르 드루에, 1763-64년, 런던 국립미술관

왕실의 비호를 받던 세브르에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베소아맛’의 장식은 세브르에 큰 명성을 안겨준 샤를르 니콜라 도댕(Charles-Nicholas Dodin, 1734-1804)의 작품으로, ‘베소아맛’이 왜 명품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의 메인 패널에 그려져 있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는 도댕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데, 단순하지만 강렬한 필치, 안정된 구도와 사실적인 인물 묘사가 단연 돋보인다.

‘베소아맛’ 메인 패널에 그려진 시누아즈리

시누아즈리는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미술과 실내장식에서 나타나는 중국 취향을 뜻한다. 당시 유럽 귀족들은 동양풍의 이국적인 인물, 풍경, 문양 등의 장식 주제를 애호했는데 퐁파두르 부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소아맛’의 장식은 마지막으로 금채장식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완성되었다. 작품의 전면을 장식하는 화려하고 섬세한 금채는 세브르의 트레이드 마크로 왕실 자기로서의 권위와 가치를 더욱 높였다.

‘빛의 세기(siècle des Lumières)’라 불리는 18세기는 구체제(Ancien régime)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맞이한 18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삶의 예술(art de vivre)’이라 하는 각양각색의 삶을 즐기는 방식이 발달했다. 패션과 미식은 물론 실내장식에 생활양식까지 오늘날 우리가 프랑스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바로 이 시기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2016년 세브르 도자도시(Sèvres – Cité de la céramique)에서 재현한 루브르 박물관 소장 ‘베소아맛’ 제작과정. © Sèvres – Cité de la céramique

세브르의 ‘베소아맛’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프랑스적 삶의 예술에 깃든 우아하고 섬세한 감성, 자유와 즐거움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베소아맛’을 볼 때마다 퐁파두르 부인, 그녀가 풍기고 싶었던 삶의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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