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로 만든 창공 – 중국에서 유럽까지’ 3D 모델링으로 재현한 리스본 산토스 궁 자기의 방

전시기간: 2019. 03. 13 – 2019. 06. 10
전시장소: 프랑스 파리 기메 국립동양박물관

포르투갈 리스본의 산토스 궁(Palácio de Santos, 현재 주포르투갈 프랑스대사관)에는 ‘자기의 방(Sala das Porcelanas)’이라 불리는 신비롭고 독특한 방이 하나 있다. 파리 기메 박물관에서 열리는 소규모 특별전 ‘자기로 만든 창공 – 중국에서 유럽까지 Un Firmament de porcelaines – De la Chine à l’Europe’는 자기의 방 피라미드 모양 천장을 장식하는 16, 17세기 중국 청화자기 270여 점을 3D 모델링으로 재현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생생한 시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3D 모델링으로 재현한 산토스 궁 자기의 방 천장. © HEEstoryNArt

이 밖에 전시는 산토스 궁에서 전세품으로 내려온 중국 자기를 비롯해 16, 17세기 침몰 무역선에서 발굴된 해저유물 및 프랑스와 포르투갈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관련 유물도 함께 선보여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자기의 방 천장 장식을 들여다 보게 한다.

박물관 4층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청화자기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문을 연다.

이란에서 온 푸른색 안료가 중국의 도자기를 장식한 전통은 당대(唐代, 618-907)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하얀 바탕에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는 기법은 8세기 후반 이슬람 세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이후 청화기법을 사용한 도자기는 이슬람 세계에서 꾸준히 유행한다.

좌) 코발트가 전면 시유된 중국 당대 도자기. 우) 코발트로 글과 선을 그려넣은 13세기 제지레(현 터키, 시리아 일부) 지방 도자기. © HEEstoryNArt

중국에서 처음으로 청화자기가 만들어진 14세기는 몽골제국이 중국과 서아시아를 모두 지배하여 두 지역 간 문화교류가 활발한 시기였다. 원대(元代, 1271-1368)와 명대(明代, 1368-1644) 초기 외교적·상업적 교류를 통해 이슬람 세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전해진 청화자기는 15세기 말부터 점점 더 많은 수량이 ‘수출상품’으로서 생산되어 유럽으로 건너가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 유럽인들의 중국 청화자기와의 첫 만남과 열망에 대한 이야기다.

유럽, 중국 자기에 빠지다

중세 시대부터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황금과 비단, 향료 같은 보물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탐험에 나선 이유는 다름 아닌 대서양을 횡단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무역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오스만 제국(Osman Empire, 1299-1922)이 팽창하면서 아시아로 가는 육로 무역로가 막힌 상태였고, 인도와의 무역은 이슬람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 프랑스 대사로 있었던 프랑수아 드 퓌멜(François de Fumel)이 1547년 이스탄불에서 프랑스로 가져온 명대 청화자기 주자. © HEEstoryNArt

유럽인들의 오래된 꿈은 1497년 포르투갈 태생의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가 리스본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면서 실현된다. 이것은 대서양에 면한 포르투갈과 인도양의 인도 사이에 바닷길을 최초로 개척한 사건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이 현지에서 구해 유럽으로 가져 온 물건들 중에는 중국 자기가 있었는데, 반투명하고 단단하며, 푸른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청화자기는 유럽 엘리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16세기 이후 인도 각지에 무역소를 설치해 인도와 독점 무역의 발판을 마련한 포르투갈인들은 세력을 확장시켜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지방에도 진출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1557년 마카오(Macau)를 점령, 대중국 무역의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대량의 중국 도자기가 인도양 해상 패권을 장악한 포르투갈배에 실려 리스본으로 오게 된다.

알메이다(de Almeida) 마카오 초대 총독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명대 청화자기 접시. © HEEstoryNArt

산토스 궁전과 자기의 방

현재 주포르투갈 프랑스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 산토스 궁전은 옛 포르투갈 왕실의 별궁으로, 1629년 리스본의 유서깊은 랑카스트르(Lencastre) 귀족 가문이 구입해 1909년까지 주거지로 사용한 곳이다. 궁전 내부에 있는 자기의 방은 1667년에서 1687년 사이 호세 루이스 데 랑카스트르(José Luis de Lencastre, 1639-87) 공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주포르투갈 프랑스대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산토스 궁. © 주포르투갈 프랑스대사관

화려하고 독특한 바로크(Baroque) 양식으로 금칠(金漆) 장식이 된 피라미드 모양 천장은 사면에 270여점의 중국 자기가 빼곡히 붙여져 있다. 오채(五彩)로 장식된 네 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화자기로, 대다수가 명대 중후반 수출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청대(清代, 1644-1912) 초에 만들어진 소량의 자기는 대체품으로서 이후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금칠 장식이 된 자기의 방 천장에 빼곡히 붙여진 중국 자기. © 파리 기메 박물관

다양한 크기와 형태, 문양의 청화자기가 자기의 방 천장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크라크(Kraak)라 불리는 수출자기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크라크자기는 그룻의 중앙에 주 문양을 크게 그리고 그 주변을 여러개의 칸(주로 8개의 칸)으로 구획하여 보조 문양을 그려 넣은 것으로, 당시 유럽에서 크게 유행한 양식이다.

1600년 필리핀 해역에서 난파한 스페인 무역선 산디에고(San Diego)에서 발견된 명대 크라크자기 접시. © HEEstoryNArt

3D 모델링으로 재현한 자기로 만든 창공

16, 17세기에 생산된 중국의 수출자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산토스 궁 자기의 방은 당시 유럽과 중국 두 문명의 조우와 교류를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역사 그 자체다. 그러나 현재 대사관으로 사용되는 이곳은 일반인 관람이 금지되어 있다. 기메 박물관 전시는 3D 모델링 첨단 기술을 통해 과거에 머물러 있던 자기의 방을 21세기 자기방방으로 재탄생시켜 생생한 세계사 현장을 누구나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기메 박물관 꼭대기 층 로톤다에 설치된 자기방 천장 가상 재현 공간 외부. © HEEstoryNArt

3D 모델링으로 재현된 자기방 천장은 박물관 4층과 연결된 로톤다에서 볼 수 있다. 실제 크기의 0.8배로 제작된 피라미드 모양 천장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색다른 시각적·공간적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 제목처럼 내 머리 위에 청화자기로 수놓은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직접 산토스 궁 자기의 방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가상 재현은 17세기 자기방 천장을 충실히 복제하고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천장을 장식하는 다채로운 자기 하나하나에 생기를 불어 넣어 270여개의 자기가 시시각각 변하면서 만드는 한 편의 멋진 공연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색다른 시각적·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는 자기의 방 천장 가상 재현. © HEEstoryNArt

모방 속에서 창조해낸 포르투갈 파이앙스

16, 17세기 리스본을 통해 들어온 중국자기는 현지 도자 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실 곳곳에는 중국의 청화자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포르투갈 파이앙스(faïence, 주석을 함유한 불투명 유약을 발라 장식을 그려넣은 도기)를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모방해서 만든 초기 작품부터 유럽과 중국 문양이 혼재하는 독특한 작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포르투갈 파이앙스를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중국과 유럽의 문양이 혼재한 포르투갈 파이앙스. © HEEstoryNArt

전시총평

도자기를 공부하면서 언젠가 산토스 궁 자기의 방을 방문할 수 있기를 꿈꿔왔다.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특수 공간이기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기메 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그래서 나에게 선물과도 같다. 직접 역사와 마주해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희열은 아니지만, 현재 자기의 방에 보존되어 있는 천장 모습이 내 눈 앞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 또한 평생 경험하기 힘든 큰 기쁨이다.

최첨단 3D 모델링 기술은 역사가 되어버린 천장의 자기 한점 한점을 깨워 21세기에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존재와 가치를 향유할 수 없다면 죽은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 전시를 통해 물리적·장소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며, 즐기며, 체험하게 됨으로써 산토스 궁 자기의 방은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 공간이 될 수 있다.

자기의 방 천장 가상 재현은 강렬했고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전시 구성이 약간 어수선하고, 그래서 조금 아쉽다.

이 전시는 2020년과 2021년 중국의 상해와 심양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고국에서 열리는 전시는 어떤 모습일지, 또 중국 현지에서의 반응은 어떠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이 글은 전시 패널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일부 내용은 필자의 견해와는 무관함을 밝힌다. 청화기법 기원에 대한 중국도자사학계와 이슬람도자사학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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