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미스터리한 프랑스 궁정 도자기 – 생포르셰르 도기 주자

<생포르셰르 도기 주전자>, 1540-60년경, 납유 도기, 프랑스 생포르셰르 ?, 높이 35.6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생포르셰르 도기는 유럽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도자기다.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60여점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뛰어난 위용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자는 장식적으로 가장 화려하고 풍성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생포르셰르 도기는 ‘앙리 2세 도자기’로 알려져 있었다. 몇몇 작품에서 앙리 2세(Henri II, 재위 1547-59)의 모노그램과 엠블럼이 발견된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프랑스의 한 미술사학자가 ‘생프로셰르 도기’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앙리 2세의 엠블럼(초승달 세 개가 겹쳐진 이미지)이 있는 생포르셰르 도기. © 루브르 박물관

생포르셰르(Saint-Porchaire)는 프랑스 서부 되세브르 주에 있는 지역(오늘날 브레쉬르 시의 일부)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생포르셰르 도기’가 실제 생산되었는지는 아직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16세기 문헌에서 ‘생포르셰르 흙(terre de Saint-Porchaire)’이라는 문구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생포르셰르 도기가 미스터리한 이유 중 하나는 그릇을 만드는 바탕흙에 기인한다. 생포르셰르 흙은 보통 도기를 만들 때  쓰는, 어디에서든 흔히 구할 수 있는 황색이나 갈색 흙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원료가 되는 하얀 흙, 고령토라고 부르는 특별한 흙이었다.

과연 프랑스 도공들은 당시 유럽인들이 열광하던 순백색 중국 자기의 비밀을 발견한 것일까?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16세기 생포르셰르 도기가 유럽에서 고령토를 처음으로 사용했지만 이것이 자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령토를 써서 유럽 최초로 중국식 경질자기 제작에 성공한 도자기는 18세기 초 독일 마이센 자기였다. 

애석하게도 프랑스 도공들은 고령토를 높은 온도로 소성하여 자기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고령토에 섞으면 고온에서 유리질화되도록 융제(融劑)역할을 하는 장석에 대해서도 그들은 무지했다. 다시 말하면, 고령토라는 흰색의 흙만 찾아냈을 뿐, 가마 온도를 1300도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자기 제작기술을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자기를 만드는 원료를 가지고도 자기를 만들 수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포르셰르 흙은 점력과 가소성이 약해 성형하기 매우 힘들었다. 이 때문에 도공들은 여러 개의 작은 부분을 따로 만들어 접합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클리브랜드 미술관 소장 주자 역시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은 비단 형태만이 아니었다. 주자의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 또한 상감기법이라는 까다로운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상감은 성형한 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파내고 그 속에 색을 내는 점토를 채워넣는 기법으로 손이 많이 가며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상감청자에서 크게 발달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청자 상감 동화 포도 동자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와 받침,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상감청자와 생포르셰르 도기는 기법적으로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고려상감청자가 도자기 표면에 직접 무늬를 새기는 반면, 생포르셰르 도기는 주로 얇고 평평한 점토판에 모양틀로 무늬를 내어 작업한 후 잘라내어 도자기 몸체에 접착시켰다.

하지만 16세기 유럽에서는 기존에 시도되지 않은 도자기 장식기법으로 독특하고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도공들이 상감기법 자체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 생포르셰르 도기는 당시 유행하던 니엘로(niello, 흑금) 상감된 금은세공품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그것의 기법뿐만 아니라 장식무늬까지도 많이 닮았다. 생포르셰르 도기가 ‘흙으로 만든 금은세공품(Orfèvrerie de terre)’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니엘로 상감된 은 잔과 뚜껑 , 1580-85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최상의 사치품, 금은세공품을 모방한 생포르셰르 도기는 그들을 위한 특별한 사치품이었다. 앙리 2세의 엠블럼(과 모노그램) 외에도 안느 드 몽모랑시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 권세가문의 문장이 다수 발견되어 그 높은 위치를 가늠해 보게 한다. 그들의 애호와 후원없이는 결코 제작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포르셰르 도기 촛대, 1540-60년경, 파리 프티 팔레. 생포르셰르 도기는 주자, 소금단지, 잔, 촛대 등 기능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생포르셰르 도기가 세상에 나온지 4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있다. 아직도 누가, 언제, 어디서 이런 놀라운 도자기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스터리해서 더욱 매력적인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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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자명품순례] 미스터리한 프랑스 궁정 도자기 – 생포르셰르 도기 주자” 댓글

  1. 처음접하고 갓 보눈중 입니다만, 희나님 유럽도자기 순례를 하신 여정을 소개해 주시면 어떤지요?

  2. 정해진 여정이 딱히 있는건 아닙니다만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본 곳도 많지만 아직 가야 할 곳은 더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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