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장한 세르누스키 미술관

파리의 세르누스키 미술관(Musée Cernuschi)은 작지만 내실 있는 동양미술 전문 박물관이다. 9개월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3월 4일 개장하자마자 코로나19로 휴관해야 했던 미술관이 드디어 다시 문을 열였다. 그리하여 7월 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재단장한 미술관을 찾았다.

세르누스키 미술관의 전신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정치가이자 경제학자, 금융인이었던 앙리 세르누스키(Henri Cernuschi, 1821-96)의 개인 저택이다.

앙리 세르누스키(Henri Cernuschi, 1821-96) 초상화, 1890년, 파리 세르누스키 미술관. © François Grunberg / Ville de Paris

1870년대 초 세르누스키는 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구입한 작품을 진열하고 거주하기 위해 파리 몽소공원 옆에 고급 주택을 지었다. 그의 사후 소장품과 함께 파리시에 기증된 건물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1898년부터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1871년부터 1873년까지 세르누스키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5000여점의 작품을 구입했다. © François Grunberg / Ville de Paris
세르누스키 미술관 입구 전경. © HEEstoryNArt

이후 미술관은 몇 차례 리모델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번만큼 대대적인 재단장을 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전 상설전시가 송대(宋代, 960-1279)까지의 고대 중국에 치중되어 있었던 반면 새로운 전시는 신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고 있는데, 총 650점의 전시품 중 430점이 이번에 처음으로 수장고에서 나와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다. 그중 상당한 수의 유물이 전시를 위해 복원되었다.

세르누스키 미술관을 대표하는 고대 중국의 청동기. © HEEstoryNArt
리모델링 후 새롭게 전시된 금동보살입상, 명대 영락(永樂, 1403-24) 연간, 높이 133 cm. © HEEstoryNArt

여전히 중국미술은 상설전시의 주축을 담당한다. 미술관 컬렉션(15000여점)의 대부분이 중국 유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시대 순으로 중국미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가지 테마별로 전시해 내용이 보다 신선하고 다채로워졌다.

‘신앙’을 주제로 하는 중국 명대 유물들. © HEEstoryNArt
‘국제 교류’를 중심으로 전시된 중국 명대 유물들. © HEEstoryNArt
‘유럽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국 청대 유물들. © HEEstoryNArt

또한 ‘넓은 시각(Grand Angle)’이라는 섹션을 곳곳에 만들어 동시대 다른 동아시아 국가(한국과 일본, 베트남)들과의 교류를 살펴보고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중국미술 중심 컬렉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양미술’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중국의 청화자기와 그 영향을 받은 한국, 일본, 베트남의 자기를 함께 전시한 ‘넓은 시각’ 섹션. © HEEstoryNArt
세르누스키가 아시아 여행 중에 구입한 고려시대 청동 종(1311년). 중국이나 일본에서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를 제외한 미술관의 한국미술 소장품은 극소수다. © HEEstoryNArt
높이 4미터가 넘는 대형 청동아미타여래좌상, 일본 17-19세기. 청동기에 관심이 많았던 세르누스키는 고대 중국 청동기와 함께 일본의 청동조각상을 다수 소장했다. © HEEstoryNArt

이번 리모델링으로 작은 규모이지만 아시아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공간도 새롭게 마련되었다. 미술관은 195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출신 작가들과 긴밀히 교류해 왔으며, 이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회화 작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공간도 있는데 아직 개방을 하고 있지 않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예술가 Ru Xiao Fan이 백자로 만든 조각 작품 <젊음>, 2012년. © HEEstoryNArt

세르누스키 미술관은 두시간 정도면 감상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규모가 부담스럽지 않다. 전시된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집중해서 보기 좋고, 공원 옆에 위치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말한다. 몇 백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 아시아가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졌다. 이번 세르누스키 미술관의 리모델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술관장인 에릭 르페브르(Éric Lefebvre)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새로운 세대는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규모의 리모델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새로운 전시 구성은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현지인에게 아시아를 처음 만나는 공간으로서는 이상적이다. 

비록 중국 중심의 전시로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만 차후 이는 특별전시를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세르누스키 미술관의 새로운 출발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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