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세계사] 르네상스 시대 여성의 결혼과 삶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 1406-69), <창가에 있는 남자와 여자 초상>, 1440년경, 패널에 템페라, 65.1 x 41.9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인본주의 정신이 꽃을 피운 르네상스 시대에는 특정 인물의 모습을 표현한 초상화가 유행하였다. 개인 초상화의 등장은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근대 세계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종 이해된다. 남성 초상화와 함께 여성을 그린 초상화도 많이 전해지고 있어 여성에게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여인들의 초상화 대다수는 남자들에 의해, 남자들을 위해 그려졌다.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프라 필리포 리피의 <창가에 있는 남자와 여자 초상>은 아름답고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춰진 15세기 이탈리아 여성의 삶과 지위를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한다. 

이 작품은 초기 르네상스 여성 초상화이자 여자와 남자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이중 초상화다. 호화로운 의상에 보석으로 치장을 여인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반면, 남자는 왼쪽 가장자리에 얼굴과 손 일부만 드러내고 있다. 얼핏 보면 고귀하고 도도해 보이는 여인이 남자를 내려다 보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그림의 주인공은 여인이 아닌 그녀를 보고 있는 남자다. 

다시 한번 그림을 관찰해 보면 밖에 서 있는 남자가 열린 창문을 통해 실내에 있는 여인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방 안의 낮은 천장 때문에 여인은 마치 작은 상자같은 뒤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두 남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자의 손 아래에 놓여 있는 가문의 문장(紋章)은 그림 속 인물의 정체를 가늠케 하는데, 남자는 로렌초 디 라니에리 스콜라리(Lorenzo di Ranieri Scolari), 여자는 안졸라 디 베르나르도 사피티(Angiola di Bernardo Sapiti)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439년경에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상류층 여성은 인생에 오직 두가지 선택만을 할 수 있었다.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 또는 수녀가 되는 것이다. 결혼 전 여성은 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그렇게 해야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은 혼자 살 수 없었으며 가까운 남자 친척 가족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상류층 여성은 노동을 하지 않았기에 결혼을 하든 수녀원에 들어가든 지참금이 필요했다. 신부가 친정에서 가져온 돈으로 남자는 땅을 사거나 사업을 했다. 그러나 남자가 먼저 죽으면 지참금은 다시 신부의 집안으로 반환되었다.

지참금 때문에 딸이 여럿일 경우 하나만 결혼시키는 일도 허다했다. 다른 딸들은 수녀원에 보내졌는데, 수녀가 되는 지참금이 더 적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결혼은 남녀 두 사람이 아닌 두 가문 사이의 정략 결혼이었다. 남녀 간 나이 차이도 꽤 컸는데, 십대 중후반에 시집을 가야했던 여자들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다른 세력 가문과의 연대를 위해 재혼하는 경우도 흔했다.

인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구현했던 르네상스 시대, 적어도 부유한 혹은 귀족 집안의 여성들은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권력과 자유를 누렸을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여성은 여전히 차별받았으며 물건 취급을 받았다.

일례로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 재위 1492-1503)의 딸이자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의 여동생인 루크레치아 보르자(Lucrezia Borgia, 1480-1519)는 아버지와 오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세번씩이나 결혼해야 했다.

도소 도씨(Dosso Dossi, 1489-1542), <루크레치아 보르자, 페라라 공작부인>, 1519-30년,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뛰어난 학식과 교양, 남편을 능가하는 정치외교력을 겸비했던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 1474-1539) 만투아(Mantua) 후작부인과 같은 ‘르네상스 여성’은 당시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사벨라 데스테>, 1499-1500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결혼은 여성이 (교회를 제외한) 공공장소에 드러낼 수 있는 인생의 몇 번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는 신랑 가문의 재산이 되었다. <창가에 있는 남자와 여자 초상> 작품 속 보이는 것 모두 남자의 소유이다. 여인의 옷과 보석, 그녀가 서 있는 방, 그리고 화면 뒷쪽의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 속 영지까지. 

피렌체에서 열린 호화로운 결혼식 장면. 1450년경, 피렌체 갤러리아 아카데미아

표면적으로 리피의 그림은 결혼을 기념하는 초상화지만 신랑 가문의 재산을 기록하는 기록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옆면 초상화는 그림 주문자인 신랑 가문의 부와 지위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정면 초상화에 비해 여성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면서 의상이나 보석은 더욱 잘 보여졌기에, 신랑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그림으로서 옆면 초상화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Piero del Pollaiuolo, 1441-96), <젋은 여인의 초상>, 1470년경, 밀라노 폴디 페쫄리 미술관
카스텔로 강탄도의 화가(Maㄴter of the Castello Nativity, 15세기 중반 피렌체에서 활동), <여인의 초상>, 1450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옆면 초상화는 15세기 피렌체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옆면에서 정면으로 남성 초상화의 유행이 점점 바뀐 반면 여성은 수 십년 동안 옆모습으로 그려졌다. 오늘날 약 40여점의 여성 옆면 초상화가 알려져 있는데, 그림 속 여인들은 젊고 아름다우며 대부분 화려한 의상과 보석으로 꾸민 모습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한결같이 생기를 잃은 듯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 여성은 아름다워야 했다. 그리고 도덕적이며 고결해야 했다. <창가에 있는 남자와 여자 초상> 속 여인은 당대 여성에게 요구되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덕목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드레스 왼손목 소매에 수놓아진 글자 ‘lealtà(loyalty, 충성)’는 결혼한 여성으로서 가져야 할 최고의 미덕을 가리킨다.

여인은 본인의 초상화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을까. 르네상스 여성에게 삶이란, 결혼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무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 그림 속 그녀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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