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숨은 이야기] 왕의 빨간 하이힐 – 루이 14세의 초상

이아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1659-1743), <루이 14세의 초상>, 1701년, 캔버스에 유채, 277 x 194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쭉 뻗은 각선미를 뽐내고 싶은 여성이라면 힘들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이 있다. 하이힐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의 전유물로 당연시되지만, 17세기 유럽의 귀족 남성들에게 하이힐은 필수 패션템이었다. 그리고 그 유행의 중심에는 ‘태양왕’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Louis XIV, 재위 1643-1715)가 있었다.

이아생트 리고의 그림 속 왕이 신고 있는 구두를 보라. 탄탄한 근육질 각선미를 자랑하는 포즈를 취한 루이 14세가 신고 있는 구두는 빨간 하이힐이다. 이 초상화가 그려진 1701년 루이 14세는 63세의 할아버지였다. 손자인 스페인의 펠리페 5세(Felipe V, 재위 1700-24)에게 선물로 주려고 그린 초상화였으나 왕의 마음에 너무 든 나머지 결국 베르사유 궁전에 남게 된다.

1600년경 페르시아(현대 이란)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하이힐은 원래 페르시아인들이 말을 탈 때 발받침에 안정적으로 발을 걸기 위해 신던 굽이 있는 신발이었다.

페르시아 기병이 신던 굽이 있는 신발, 17세기, 토론토 바타 신발박물관

페르시아 스타일의 구두는 17세기 전반 프랑스와 유럽의 궁정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다. 노동을 하거나 오래 걷는데 불편한 하이힐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던 귀족만이 신을 수 있었던 것으로 성(gender)이 아닌 권위의 상징이었다.

17세기 후반 베르사유 궁전에서 시작된 빨간 하이힐은 왕과 극소수만을 위한 더욱 특별한 아이템이었다. 당시 붉은 염료는 값이 매우 비쌌을 뿐더러, 쉽게 얻을 수 있는 색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루이 14세가 빨간 하이힐을 신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1650년대에 그려진 초상화가 보여주듯이 왕은 어린 시절부터 빨간 하이힐을 즐겨 신었던 것 같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있는 십대의 루이 14세, 1651/54년, 빈 미술사박물관

루이 14세의 정확한 키를 알 수는 없지만(여러 학자들이 165 cm 미만이었을거라 추정하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키를 커보이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하이힐은(왕은 12 cm 굽도 신었다) 분명 ‘대왕’이라는 그의 칭호에 어울리는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또한 루이 14세는 선택된 몇몇 귀족들에게 그를 따라 빨간 하이힐을 신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궁정에서 빨간 하이힐은 곧 왕의 총애를 의미했다. 패션템이었던 하이힐이 귀족의 신분 증표였다면 빨간 하이힐은 영광의 배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빨간 하이힐은 프랑스를 넘어 당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궁정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루이 14세가 사망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성들의 굽은 점차 낮아졌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빨간 굽은 왕실을 비롯한 특권층의 상징이었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있는 영국의 찰스 2세, 1671-76년, 영국 왕실컬렉션
낮은 빨간 굽의 구두를 신고 있는 루이 16세, 1778년, 베르사유 궁전

역사 속에 잊혀졌던 빨간 하이힐은 20세기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오직 여성만을 위한 아이템으로.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트레이드 마크인 높은 굽과 빨간 밑창

아찔하게 높은 굽과 빨간 밑창으로 유명한 프랑스 명품 구두 브랜드 크리스티앙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은 현대 여성들의 로망이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로망. 다행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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