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힐링

연구하고 논문쓰는 일이 생활이었던 나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닌 일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중국미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독서는 내 삶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 석사과정에 있을 때에는 배움에 대한 갈증과 열망으로 전공인 중국도자사를 비롯한 동양미술사 전반에 대한 책을 두루두루 탐독했다. 공부는 고되었지만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즐거움은 참으로 컸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한가지 특정한 주제를 심도있게 연구하면서 독서 범위는 절대적으로 좁아졌다.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수천 권의 책을 읽었지만 모두 연구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방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다독과 속독 능력이었다. 

심신을 수양하고 교양을 넒히기 위하여 책을 읽는 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른 독서의 정의다. 이 정의대로라면 그동안 내가 학위논문과 학술논문을 쓰면서 한 독서는 자료수집을 위한 가짜 독서일 뿐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아니다. 독서라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으로 나의 심신은 피폐해지고, 전문지식은 늘었으나 결코 교양이 쌓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지금, 나는 정말 오랜만에 진짜 독서를 하고 있다. 전공분야 공부를 위한 독서가 아닌, 오로지 독서 자체의 즐거움을 위한 행복한 책 읽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해방감과 여유로움인지...

동네 숲내음 가득한 호수공원 옆에 위치한 작은 시립도서관에서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고르는 기쁨. 햇살 가득 들어오는 도서관 열람실 창가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는 쾌감. 이것이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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