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원나라 몽골 황실을 위하여 – 청백자 관음보살상

<청백자 관음보살상>, 원대 1300년경, 높이 67 cm, 북경 수도박물관. © HEEstoryNArt

북경 수도박물관 도자실에는 백자로 만든 대형의 불상 한 점이 전시되어 있다. 몽골족이 중국을 통치하던 원대(元代, 1271-1368) 강서성(江西省)의 경덕진요(景德鎮窯)에서 제작한 관음보살상이다. 범상치 않은 크기와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 엄숙하지만 평화로운 얼굴 표정은 관람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불상을 보며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늘 감동하고 감탄한다.

유희좌 자세로 앉아 있는 관음보살. © HEEstoryNArt

관음보살은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편안하게 올려놓은 채 왼손은 아래로 내린 왼쪽 다리 옆 바닥을 짚고 있다. 이러한 자세를 유희좌(遊戱坐)라 하는데, 관음보살이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 Potalaka)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바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화려한 보관(寶冠, 왕관)을 쓰고 화형(花形)의 커다란 귀걸이를 한 관음보살의 가슴 아래로 길게 영락(瓔珞, 다양한 길이의 구슬장식과 장신구)이 내려뜨려져 있다.

도자로 만든 불상은 한대(漢代, 기원전 206-기원후 220) 이후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그러나 미적·기술적으로 우수한 도자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송대(宋代, 960-1279)에 이르러서다. 이 시기 도자기 산업이 전국적으로 융성하고 불교가 대중화·민간화되면서 양질의 소형 도자불상이 경덕진요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도자기 산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다. 금속이나 목재에 비해 싸고 비천한 재료인 도자로 만든 불상은 서민들도 부담없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수도박물관 관음보살상이 만들어진 경덕진요는 중국 남부 지방의 대표적인 자기(瓷器) 생산지로서 송대부터 청백자(青白瓷, 흰바탕에 푸른 빛을 띤 투명유를 입힌 백자)로 명성이 높았다. 1271년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칸(Khubilai Khan, 재위 1260-94)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1278년 경덕진요에 궁정용 자기를 관장하는 ‘부량자국(浮梁瓷局)’을 설립한다.

쿠빌라이칸 초상화, 원대, 비단에 채색,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

몽골 황실의 후원 아래 경덕진요는 송나라 때보다 한 차원 진보한 자기를 생산하게 되는데 바로 수도박물관 관음보살상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원나라 시대에는 자석(瓷石)에 고령토(kaolin)를 이전보다 더 높은 비율로 섞어 배합함으로써 태토의 산화알루미늄 함량이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소성 온도가 높아져 더욱 견고하고(hard), 희고(white), 반투명한(translucent) 자기(porcelain)를 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정교한 대형 조각상(50 cm 이상)의 제작도 가능하게 하였는데, 현재 수도박물관 관음보살상을 포함한 대형의 경덕진요 백자불상이 십 여점 알려져 있다. 모두 뛰어난 조형미와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오직 몽골족이 통치하던 원대의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것이다.

<청백자 불상>, 원대, 취리히 리트베르크 박물관. © HEEstoryNArt

몽골 황실은 금강승불교(밀교, Vajrayana)를 근본으로 하는 티베트불교를 신봉하였다. 쿠빌라이칸은 티베트의 승려 파스파(Phagspa, 1235-80)를 초청해 국사(國師, 이후 제사帝師) 칭호를 내리고 전체 불교의 총통(總統)으로 삼았으며 그에게 전 티베트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티베트불교의 전파와 함께 원나라에는 새로운 양식의 불교미술이 유행하게 되는데, 1262년 파스파가 데려온 네팔 출신의 아니가(阿尼哥, 1245-1306)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조소(彫塑)에 뛰어났던 아니가는 45년 동안 몽고 황실의 각종 불교 의례와 의식에 필요한 신상(神像)을 제작하고 총괄하였을 뿐 아니라 황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경덕진요의 초대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따라서 수도박물관 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원대의 대형 백자불상은 아니가가 직간접적으로 디자인과 제작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조각상의 정교한 조형과 화려한 장식에 더해진 네팔 양식은 그의 참여없이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밀교의 다양한 신들과 복잡한 도상은 중국인 장인들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네팔양식이 도드라진 청백자 보살상, 원대, 시카고 필드 박물관

북방 유목민족인 몽골족이 중국 남부에서 생산된 청백자에 매료된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백색을 상서로운 색깔로 여기는 몽골족의 문화적·심미적 감성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몽골인들은 의례 시 백옷을 입었고, 백색 덮개로 불상을 감쌌으며, 거대한 백탑(白塔)을 세웠다. 백색을 숭상하는 몽골인들에게 깨끗하고 순수한 백자로 만든 불상은 어떤 값비싼 재료로 만든 불상보다 상서롭고 고귀했을 터다.

북경 백탑사(정식명칭: 묘응사妙應寺)에 있는 아니가가 만든 백탑

수도박물관 관음보살상은 1955년 북경의 시내 한 도로에서 출토되었다. 이 불상이 정확히 언제,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300년경 원나라 수도인 북경에서 열린 몽골 황실의 어느 성대하고 엄숙한 불교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전시실을 압도하는 관음보살상의 기운은 여전히 성스럽고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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