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박물관]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전경. © HEEstoryNArt

파리에서 6시간 기차를 타고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Leeuwarden)에 온 건 순전히 도자기 박물관 때문이다. 오랫동안 멀다는 핑계로 방문을 미뤄왔던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Keramiekmuseum Princessehof)을 지난 8월 말 마침내 찾았다.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뒷마당 전경. © HEEstoryNArt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박물관의 야심찬 특별전시 ‘바닷속에 가라앉은 보물들’ 관람이었지만 예전부터 항상 궁금했던 건 상설전시의 내용과 방식이었다. 박물관에 도착함과 동시에 특별전 관람을 마치고 나는 본격적으로 상설전시실 탐험에 나섰다. 

전시는 마리 루이즈(Marie Louise, 1688-1765)와 함께 시작한다. 헤센카셀(Hessen-Kassel) 방백의 딸로 태어나 프리슬란트(Friesland) 총독이자 오라녜 공인 요한 빌럼 프리소(Johan Willem Friso, 1687-1711)와 결혼해 레이우아르던으로 오게된 그녀는 이곳에서 1731년부터 1765년 사망할 때까지 거주했다. 박물관 이름에 ‘프린세스호프(궁전)’가 붙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박물관이 여러 채 건물이 연결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그녀 덕분이다.

나사우(Nassau) 가문의 요한 빌럼 프리소는 빌럼 3세(Willem III)의 후계자가 되면서 오라녜(Oranje) 공 칭호를 물려받았다. 마리 루이즈와 요한 빌럼 프리소의 아들인 빌럼 4세(Willem IV)는 오라녜나사우(Oranje-Nassau) 공으로서 네덜란드 공화국 전체를 대표하는 총독이 되었고, 그의 손자 빌럼 1세(Willem I)는 1815년 네덜란드 왕국 초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따라서 마리 루이즈는 현재 네덜란드 왕가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다. © princessehof.nl

박물관 1층 전시실에는 마리 루이즈와 가족의 초상화를 비롯해 18세기 프리슬란트 궁정 생활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녀가 식사를 하던 공간도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마리 루이즈의 식당. © HEEstoryNArt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상설전시가 진행된다. ‘동양이 서양을 만나다(East meets West)’라는 주제로 꾸며진 전시는 총 8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테마는 도자기 제작에 관한 것이다. 도자기의 종류와 기형, 유약과 장식 기법 등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도자기 제작에 대해 소개하는 전시실. © HEEstoryNArt
전시실 한쪽 벽면에 그려진 세계지도는 주요 도자기 생산지와 국제 무역 루트를 보여준다. © HEEstoryNArt

이어지는 전시는 세계 도자기를 지역별, 시기별, 종류별, 형태별 등으로 구분하여 선보인다.

박물관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많은 수량과 다양한 중국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청대까지의 대표 유물을 엄선하여 꾸민 중국실은 중국 도자사의 흐름을 훑어보는 데 충분하다. 전시품은 많지 않지만 질적으로 뛰어나 눈이 즐겁다.

중국실 전경. © HEEstoryNArt

다음은 청자실이다. 중국과 한국의 청자를 중심으로 꾸며진 곳으로, 박물관 대표 명품인 송나라 여요(汝窯) 접시는 또 하나의 공간에 따로 전시가 되어 있다. 송대 도자기 중에서 가장 희귀한 여요이지만 이렇게 특별 대우해야 할 대상인지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청자의 위상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전시임에는 분명하다.

청자실 전경. 커튼이 쳐져 있는 공간에는 박물관의 대표 명품인 송나라 여요(汝窯) 접시가 전시되고 있다. © HEEstoryNArt

동아시아 전시실에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의 도자기들을 만날 수 있다. 중국실에 비해 여러 나라의 도자 문화를 한꺼번에 살펴보기에는 협소한 공간인데다 전시품도 적어 조금 아쉽다. 부족한 소장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굳이 청자실을 따로 만들기 보다는 동아시아 전시실을 확장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아시아 전시실 전경. 맨 앞 진열장에는 조선 시대 초기 백자양이잔이 전시되어 있다. © HEEstoryNArt

‘동양과 서양’이라는 테마로 구성된 전시실은 박물관 상설전시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동서양의 교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며, 특히 대항해시대 이후 교류에 주목하는 유럽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한 시도가 돋보인다.

비단길을 통해 이루어진 고대 중국과 중동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도자기. © HEEstoryNArt
동양과 서양 전시실 전경. © friesland.nl

‘무역’을 다루는 전시실은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도자기가 전시되고 있는 공간이다. 배에 선적된, 겹겹이 쌓여진 크레이트(crates)를 연상케 하는 진열장이 인상적인데, 마치 분류가 잘 되어 있는 개방형 수장고를 보는 듯하다.

무역 전시실. © i29.nl
전시실 양 벽면에 걸려있는 각종 도자기 타일. © HEEstoryNArt
세계 시장에서 인기있는 무역상품이었던 마르타반 항아리. © HEEstoryNArt

박물관은 근대 도자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마지막 두 개의 전시실은 아르 누보(Art Nouveau)와 아르 데코(Art Deco) 스타일의 네덜란드 작품 및 20세기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도자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아르 누보 전시실 전경. © friesland.nl / Ruben van Vliet
카렐 아펠 (Karel Appel), <머리>, 1978년,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 HEEstoryNArt

박물관 3층은 현대 도자기를 위한 공간으로 특별전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박물관 3층에 전시 중인 현대 도자 작품. © HEEstoryNArt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니 첫 번째 테마 전시실에서 보았던 보케 드 브리의 작품이 문득 떠오른다.

보케 드 브리(Bouke De Vries), <공작 2>, 2014년,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 HEEstoryNArt

옛 중국 자기 파편을 사용해 만든 현대 서양 작품 속에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마치 이곳 박물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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