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항아리인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한옥 체험공간 전경. ©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지난 1월 초 새롭게 단장한 파리의 한국문화원을 다녀온 후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하나 있다. 문화원을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백자 달항아리. 도자기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문득 왜 이곳에 달항아리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가 해외의 한국문화원에서 전시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옥 체험공간이라고 꾸민 곳 한가운데 단독으로 전시된 달항아리가 나에게는 다소 쌩뚱맞아 보였다. 게다가 진품이 아닌 현대 재현품(국보 제310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아닌가. 

국보 제310호 백자 달항아리, 조선시대, 높이 43.9 cm 몸통지름 44 cm, 국립고궁박물관

왜 달항아리인가? 달항아리가 도대체 뭐길래 해외의 한국 문화미술 관련 전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일까? 달항아리는 그만큼 대표성이 있는 작품일까? 

백자 달항아리는 보통 높이가 40 cm 이상 되는 대형으로,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큰 항아리는 물레로 한번에 성형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든 후에 두 부분을 접합시켜 완성하였다.

따라서 접합한 부분의 이음선이 드러나거나 좌우의 균형이 약간 비틀어지고 기울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의도하지 않은 부정형의 자연스러운 조형미’가 바로 백자 달항아리에서만 보이는 독특하고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백자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엽 사이 조선왕실의 관요인 사옹원 분원(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되었다. 달항아리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정확히 입증된 것은 없다. 액체나 곡식을 담는 저장용이나 꽃을 꽂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백자 달항아리가 만들어진 17세기 후반, 18세기 전반의 시기에 조선은 임진왜란(1592-98)과 병자호란(1636-37)의 피해를 극복하고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었다. 다양한 종류의 백자가 이 시기에 제작되었는데, 달항아리는 그중 하나였다.

달항아리의 따뜻한 순백색 빛깔과 너그러운 둥근 형태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조선 백자만의 특징이다. 특히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한국 특유의 미감을 발휘한 것으로 관심을 받아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도자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문헌과 조선왕실 가족의 무덤에서 출토된 자료를 보면 왕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된 자기가 애호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청나라의 화려한 채색 도자기는 사절단의 연경사행과 관허(官許) 상인들의 무역으로 조선에 꾸준히 유입되었으며, 북경을 다녀온 사신들은 중국 도자기에 대해 감탄하는 기록을 많이 남겼다. 

달항아리가 유행했던 18세기 조선에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도자기를 애호한 경향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오늘날 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달항아리에 그토록 주목하는 것일까? 한국 도자기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라 해서 조선시대 특정 기간 동안 유행했던 달항아리가 한국 문화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까?

완벽하고 세련미 넘치는 청자를 만들었던 고려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달항아리는 결함 투성일 것이다. 섬세하고 화려한 고려 상감청자는 덜 한국적인가? 각 시대마다 다른 특징과 미감이 있는데 유독 백자 달항아리를 띄워 해외에서 한국 문화를 전하는 것이 때로는 지나쳐 보인다. 왜 달항아리가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가 되어야 하는 걸까?

혹자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의 원류는 대부분 조선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백자 달항아리가 강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달항아리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인정해야 하나, 동시에 이 때문에 좀 더 신선하고 다채로운 한국 문화와 미술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그 시대 사람들은 달항아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달항아리를 만들면서 혹은 사용하면서 절제미, 담백함, 푸근함, 부정형의 조형미 등을 떠올렸을까?

‘한국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한국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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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달항아리인가” 댓글

  1. 너무도 적절하고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국의 조형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달항아리가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대표주자가 된 현실이 가히 불가사이합니다. 제작된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봐도 용도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체불명의 도자기인데다 무정형의 아름다움이란 말은 야나기와 같은 일본의 미학자들의 독특한 안목에서 나온 표현일 뿐 일반화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당시 조선의 상류층은 중국과 일본의 화려한 도자기를 애호했습니다.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 선생이 붙인 달항아리란 이름이 이토록 혼돈을 야기하게 될 줄은 최선생님도 몰랐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국보 백자대호는 명품임에 틀림없으나 현대 도예가들이 양산하고 있는 달항아리는 한마디로 코메디라고 하겠습니다.

  2.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명품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미술을 잘 모르는 일반 외국인들도 고려청자를 보면 왜 명품인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달항아리는 굉장히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달항아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인지,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명품인지는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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