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자연이 만든 예술 – 베르나르 팔리시의 ‘시골풍 도기’ 접시

베르나르 팔리시, <‘시골풍 도기’ 접시>, 16세기 후반(1555-65년경), 납유 도기, 프랑스 생트, 길이 48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도자기 접시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역겹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릇을 빼곡히 채운 뱀, 개구리, 거북이, 도마뱀, 물고기, 가재, 게, 그리고 수많은 조개들. 이것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접시다. 하지만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왕실과 귀족들이 몹시 탐내던 ‘잇템’이었다. 

이 기괴한 접시를 만든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 1510-90)는 영국의 조시아 웨지우드와 더불어 유럽 도자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추앙받는 도예가이자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지만 유럽에서 팔리시는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와 비견될 만한 위치에 있다.

다 빈치처럼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휘한 인물을 가르켜 ‘르네상스 인간(Renaissance man)’이라고 부르는데, 팔리시 또한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만능인이었다. 유리 화공과 측량기사를 거쳐 독학으로 도예가가 된 팔리시는 자연과학자, 작가, 강의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 입구에 있는 베르나르 팔리시 동상. 출처: 위키피디아

팔리시가 태어나고 활동한 16세기는 이탈리아로부터 전파된 르네상스가 프랑스에서 꽃피는 시기였다. 프랑수아 1세를 시작으로 앙리 2세와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의 후원 아래 새로운 형태의 문화와 예술이 발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개혁의 여파로 나라가 둘로 나뉘는 혼란에 빠진 시기이기도 했으며, 장 칼뱅(Jean Calvin, 1509-64)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서 신교도가 늘어나 종교전쟁이 처절하게 지속되었다.

프랑수아 뒤부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1572-84년, 로잔 주립미술관. 가톨릭파와 신교파 사이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은 신교파 수천 명이 죽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로 절정을 이뤘다.

팔리시는 프랑스에서 위그노(Huguenot)라고 불리는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다. 당시 위그노들은 망명을 하거나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왕실과 귀족의 보호 아래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며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온갖 생물체들이 모여 있는 이 대형 접시다. 그는 스스로 만든 도자기에 ‘시골풍 도기(또는 전원풍, rustiques figulines)’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골풍 도기’ 접시 세부 장면. 동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팔리시의 작품에는 그의 종교적 신념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원천으로 받아들이며 교회 권위를 부정했던 신교도들은 성화와 성상을 우상 숭배로 여기고 형상화를 철저히 배척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신을 찬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은 자연을 탐구하고, 또 그 탐구의 결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이었다. 팔리시에게 있어 위대한 창조주의 피조물인 자연은 탐구하고 재현해야 하는 모델이자 도달해야 하는 목표였다. 이로써 신의 위대성을 증명하고 그에게 온전히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골풍 도기’의 작업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팔리시는 직접 바다, 강, 연못 등을 찾아다니며 동물을 산 채로 잡았다. 수집한 동물은 항아리에 넣어 질식사시킨 후 바로 꺼내 석고 주형을 떠서 성형했다. 접시에 보이는 뱀, 개구리, 거북이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고 정교하게 표현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동물의 형상뿐 아니라 색상도 극사실적인데, 섬세하고 풍부한 유약 색깔은 오랜 기간의 연구와 실험 끝에 얻어낸 것이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접시는 하나의 소우주(microcosm)와 같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경내에서 발굴된 팔리시 공방의 개구리 모형틀. © RMN-Grand Palais

접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 그릇이 실제 음식을 담아 먹는 데 사용된 것은 아니다. 팔리시의 도자기는 독일어로 분더카머(Wunderkammer)라고 부르는 ‘호기심의 방(또는 경이의 방)’에 진열되는 장식예술품이었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진기하고, 이상하고, 이국적이고, 희귀하고, 아름답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분더카머는 이런 특별한 사물들을 모아놓은 공간으로 오늘날 박물관의 전신이라고 할 만하다. 이곳에는 동물, 식물, 광물 등 자연물에서부터 인간이 만든 예술품이나 발명품까지 각양각색의 수집품들이 뒤섞여 있었다. 놀라울 만큼 자연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시골풍 도기’는 당시 지배층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호기심의 방’을 그린 판화(Dell’Historia Naturale), 1599년, 나폴리.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절대권력자의 보호를 받던 팔리시는 1587년 결국 이단으로 체포되었다. 가톨릭으로 개종을 거부한 그는 1590년, 파리 바스티유 감옥에서 투옥생활을 하던 중 사망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앙리 4세가 신교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낭트칙령(1598년 4월 13일)을 공포하면서 수십 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은 종식되었다. 그리고 프랑스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르네상스 시대도 같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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