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궁 ‘팔레’와 ‘샤토’의 차이 (ft. 팰리스와 캐슬)

프랑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루브르 궁과 베르사유 궁. 프랑스어로 루브르 궁은 Palais du Louvre(팔레 뒤 루브르), 베르사유 궁은 Château de Versailles(샤토 드 베르사유)라고 한다. 같은 왕궁임에도 불구하고 왜 ‘팔레(palais)’와 ‘샤토(château)’라는 두 개의 다른 용어를 쓰는 것일까?

파리 시내에 있는 루브르 궁(Palais du Louvre). © Musée du Louvre / Olivier Ouadah
파리 근교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Château de Versailles). © Château de Versailles / Bruno Levesque

팔레와 샤토 두 단어 모두 ‘왕실 거주지’라는 뜻 외에도 여러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왕궁’의 범위에 한정을 시켜 결론부터 말하지면, 팔레는 파리 시내(도시, ville)에 있는 궁을, 샤토는 파리 시외(농촌, campagne)에 위치한 궁을 일컫는다.

루브르 궁을 비롯한 뤽상부르 궁, 팔레루아얄 궁, 지금은 사라 없어진 튀일리 궁과 시테 궁 모두 ‘팔레’라고 불리며, 파리 시내 중심에 위치한다. 반면에 뱅센 궁, 베르사유 궁, 생제르맹앙레 궁, 퐁텐블로 궁 및 루아르강 일대의 궁들은 ‘샤토’라고 하며, 파리 근교 또는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파리 시외에 있는 궁전이 팔레로 불리는 예는 없으며(콩피에뉴 궁 예외), 마찬가지로 파리 시내의 궁전을 샤토라고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팔레는 궁(宮), 샤토는 성(城)으로 번역한다. 위에 열거한 샤토들은 대부분 ‘성’으로 표기하는 반면, 베르사유는 예외적으로 ‘궁’이라 한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일차적으로 ‘적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을 쌓아 만든 건축물’이라는 뜻을 지닌 ‘성’이라는 용어보다 ‘임금이 거처하는 집’의 의미를 지닌 ‘궁’이 베르사유를 표현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샤토들도 왕과 왕실이 거주했던 공간, 즉 왕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베르사유가 여느 프랑스의 샤토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데다가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친숙한 프랑스 왕과 왕비가 살았던 ‘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영어로도 베르사유 궁은 Versailles Palace라 표기를 하고 있다.

팔레(palais)와 팰리스(palace), 그리고 샤토(château)와 캐슬(castle)

프랑스어의 팔레는 영어로 팰리스(palace)이며, 샤토는 캐슬(castle)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베르사유 궁은 영어로 캐슬이 아닌 팰리스로 표기하는 것일까? 팰리스와 캐슬 두 단어 모두 옛 프랑스어에서 유래하지만 용어의 의미에 있어서 프랑스어와 영어간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팔레가 도시에 위치한 궁전을 지칭하는 반면, 팰리스는 위치와 상관 없이 왕실의 거주지를 일컫는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잘 아는 런던 시내에 위치한 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도 팰리스이며, 헨리 8세가 살았던 런던 근교의 햄튼코트 궁(Hamton Court Palace)도 팰리스이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버킹엄 궁은 영어의 팰리스에 해당하는 ‘팔레’라고 하지만, 런던 근교 즉 도시 밖에 위치한 햄튼코드 궁은 ‘샤토’라고 한다.

영국 햄튼코트 궁(Hampton Court Palace). © Historic Royal Palaces / Chris Capstick

흥미롭게도 같은 영국 왕실 주거지이지만 윈저 성(Windsor Castle)은 ‘궁’이 아닌 ‘성’이다. 9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윈저 성은 영국 왕실이 지금까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햄튼코트 궁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런던 시외에 위치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로는 ‘샤토’가 된다.

영국 윈저 성(Windsor Castle). © Windsor Castle – Royal Collection Trust

도시와 시골이라는 궁의 위치로 나누는 프랑스와는 다른 영국의 팰리스와 캐슬 분류 기준은 무엇일까? 왜 윈저는 캐슬이고 햄튼코트는 팰리스인가? 이유는 왕궁이 세워진 시기와 사용 목적 및 용도에 있다.

11세기 정복왕 윌리엄(William I, 1066-87)이 세운 윈저 성은 건축 이후 여러 차례 개축과 정비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요새(要塞)로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반면에 햄튼코트 궁은 헨리 8세(Henri VIII, 재위 1509-47) 때 재상이였던 추기경 울지(Thomas Wolsey, 1475-1530경)의 저택을 헨리 8세가 몰수하여 왕궁으로 쓰기 위해 증축한 곳으로, 방어 시설이 거의 없는 아늑한 주거용 건축물이다. 따라서 요새로서의 기능이 없는 순수 주거(住居) 목적으로 지어진 베르사유 궁은 영어로 캐슬이 아닌 ‘팰리스’가 되는 것이다.

베르사유처럼 샤토라고 불리는 파리 이외의 지역에 위치한 프랑스의 궁들 역시 건축 시기와 사용 목적, 용도에 따라 캐슬 또는 팰리스로 구분하여 표기를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여러 샤토들이 영어의 캐슬과 팰리스라는 두 가지 범주로 명확히 묶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시 말하면, 분류가 애매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682년 프랑스 왕실이 베르사유에 정착하기 전 왕실의 주거지였던 파리 근교의 생제르맹앙레 궁(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은 캐슬이나 팰리스로 번역하지 않고 종종 원어인 ‘샤토’로 표기한다.

파리 근교의 생제르맹앙레 궁(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 © HEEstoryNArt

생제르맹앙레 궁은 본래 세느강이 내려다보이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세워진 중세의 성이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재위 1515-47)가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요새형 성에서 주거용 궁전으로 변화했다.

현재 중세 건축물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이른 시기에 세워졌던 형태에 따라 ‘캐슬’로 부르기도 하고, 변화된 모습과 용도에 맞춰 ‘팰리스’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영어로 표기를 하는 대신 프랑스어인 샤토를 고유명사처럼 쓰기도 하는데, 이는 요새부터 궁전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의미와 역사를 가진 ‘샤토’를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가 영어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샤토(château)의 의미와 변천사

영어의 캐슬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어의 샤토 역시 중세 시대의 요새에서 출발한다. 캐슬이 일반적으로 봉건사회 지배자의 요새화된 주거지를 뜻하는 반면, 캐슬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샤토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하게 된다.

영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 이후 평화가 점차 찾아오자 더 이상 방어가 목표가 아닌 안락과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면서 프랑스에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나타나게 되는데, 루아르(Loire)강 일대의 샤토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이후 크고 작은 샤토가 왕과 귀족들에 의해 이 지역에 세워졌으며, 오늘날 약 300여개가 존재한다. 이들 샤토는 군사적 시설을 최소화하고 주거성을 높인 것으로 이전의 샤토와는 본연히 다른 것이다.

르와르강변에 세워진 샹보르 궁(Château de Chambord). © Château de Chambord

프랑수아 1세에 의해 왕실이 파리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앞서 언급한 생제르맹앙레 궁도 이 시기에 이르러 쾌적한 주거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며, 퐁텐블로 궁(Château de Fontainebleu)과 같은 아름다운 프랑스식 르네상스 궁전이 탄생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샤토는 더 이상 요새용 성이 아닌 전원의 화려한 대저택이라는 의미 가리키게 되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중세 시대 방어용 요새로서 건축한 성은 ‘샤토 포(château fort)’라 하여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와 목적을 가진 ‘샤토’와 구분을 하고 있다. 영어의 캐슬은 엄밀히 말해 ‘샤토 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영국의 윈저 성이 바로 중세 ‘샤토 포’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윈저 성과 같이 많은 프랑스의 왕궁들도 중세 시대에 세워졌다. 뱅센 궁(Château de Vincennes)처럼 중세의 샤토 포 형태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루브르 궁이나 생제르맹앙레 궁처럼 시작은 샤토 포였으나 시대를 거치면서 주거용 궁전으로 변화한 곳도 있다. 그러나 17세기 말에 세워진 베르사유 궁은 이들 중세 시대 건축물과 달리 한번도 방어 기능을 가져본 적이 없다.

파리 근교에 위치한 뱅센 궁(Château de Vincennes). 출처: 위키피디아

베르사유 궁이 지어질 당시의 샤토는 이미 샤토 포의 의미가 지워지고, 도시의 팔레와 대비되는 시골의 화려하고 웅장한 대저택이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17세기의 베르사유는 한낱 시골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의 베르사유는 더 이상 과거에 도시의 팔레와 구별짓게 했던 농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현재 베르사유는 인구 5만명의 도시이며, 파리 중심에서 전철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베르사유 궁 정원 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산림과 농지는 여전히 파리의 팔레와 대비되는 풍경을 보여주며 샤토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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