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숨은 이야기] 근대 남성을 그린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조 – 부지발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95), <부지발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 1881년, 캔버스에 유채, 73 x 92 cm,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인상주의 화가들은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을 즐겨 그렸다. 하지만 남성이 아이를 돌보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베르트 모리조의 <부지발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그림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 <가브리엘과 장>, 1895-96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화면 속 주인공은 모리조의 남편 외젠 마네(Eugène Manet, 1833-92)와 딸 쥘리(Julie Manet, 1878-1966)다. 1881년부터 1884년까지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부지발(Bougival)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낸 모리조는 이곳에서 가족의 단란한 한 때를 캔버스에 담았다.

그림은 벤치에 앉은 아빠의 무릎 위에서 모형 장난감 놀이를 하는 딸을 지그시 바라보는 마네의 눈길과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모리조는 이 작품에서 마네를 매우 모던한 남성으로 그려냈다. 패셔너블한 옷차림에 한 손을 자켓 주머니에 넣은 자세도 모던하지만, 무엇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전통적으로 육아는 여성의 몫이었기에 당시 이 그림이 불러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더구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엄마는 이젤을 세워 놓고 작업 중이었으니 더욱 놀랄만하지 않은가!

1841년 프랑스 고위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난 모리조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여동생 에드마(Edma Morisot, 1839-1921)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배웠던 모리조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당시 부르주아 계층의 여성이 직업 화가가 되기엔 사회적 제약이 컸다. 게다가 미술학교에 여성의 입학이 허가되지 않아 정식 교육의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부르주아 여성에게 그림은 오로지 취미생활로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화가의 꿈을 접은 에드마와 달리 모리조는 집념을 가지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요람에서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에드마의 모습.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74년 모리조는 당시 여자로서 매우 늦은 나이인 33살에 외젠 마네와 결혼했다. 외젠은 모리조와 친분이 두터웠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83)의 동생으로 그 역시 화가였다. 

마네는 일생 동안 모리조를 뒷바라지했다. 본인보다 재능이 뛰어난 아내를 위해 그는 모리조의 매니저를 자청했다. 게다가 마네는 당시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조가 결혼 전 성을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그녀가 베르트 마네가 아닌 베르트 모리조로 그림에 서명할 수 있게 말이다. 

마네의 외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모리조의 모델이 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1875년 영국 와이트 섬(Isle of Wight)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모리조는 창가에 있는 마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와이트 섬에서의 마네>는 모리조가 처음으로 남성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베르트 모리조, <와이트 섬에서의 마네>, 1875년,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남성 화가들은 어떤 제약도 없이 여성을 그린 반면, 모리조에게 동등한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에두아르 마네는 모리조를 그렸지만 그녀는 그를 그릴 수 없었다. 모리조가 남성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결혼 후였으며, 남편뿐이었다. 

비록 다른 남성을 화폭에 담을 순 없었지만 모리조는 남편인 외젠 마네를 통해 새로운 남성상을 그렸다. <부지발에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 속 혼자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모습은 당시 가히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모리조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딸과 다정하게 놀아주는 자상한 남편, 아빠의 모습만큼 (화면에 보이진 않지만) 진취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아내, 엄마로서의 그녀가 아니었을는지.

화가로서의 모습을 그린 베르트 모리조의 자화상. 1885년,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선구적인 인상주의 ‘여성’ 화가로서 평생 활발하게 활동한 모리조는 54살에 사망할 때까지 400여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그녀의 사망증명서에는 ‘무직’이라 기록되어 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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