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클로드 모네 ‘개양귀비꽃’

클로드 모네, <개양귀비꽃>, 1873년, 캔버스에 유채, 50 x 65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알면 그림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플랑드르 미술의 대가 얀 판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가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처럼 수수께끼를 풀 듯 해독해야 하는 그림이 있는 반면,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면 되는 그림도 있다.

얀 판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년, 런던 국립미술관

파리 근교의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개양귀비꽃>은 바로 이런류의 그림이다. 특별한 미술사적 지식이나 어떤 심오한 고찰 없이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말 그대로 ‘보는’ 즐거움이 있는, 보고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래서 집에 걸어놓고 싶은 그림이랄까.

그림 속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어느 화창한 초여름 날, 붉은 개양귀비꽃이 가득 핀 들판을 가로 질러 한 젊은 여인과 남자 아이가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다.

개양귀비꽃이 피는 5, 6월은 프랑스에서 날씨가 제일 맑은 시기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따스한 햇빛이 세상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샘솟게 하는 마법같은 날들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1871년 영국에서 돌아온 모네는 그의 가족과 함께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Argenteuil)에 정착했다. 그리고 1878년까지 이곳에서 250점이 넘는 작품을 그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아내인 카미유와 어린 아들인 장은 이 시기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개양귀비꽃> 속 산책하는 모자(母子) 커플도 아마 그들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르장퇴유는 모네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작품의 주제 자체였다. 이곳에서 거주한 7년의 시간은 모네가 본격적으로 야외 자연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이자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의 아르장퇴유는 현재 번화한 도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초록 녹음과 드넓은 들판이 있는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어 마네, 르누아르, 시슬레 등 당대의 여러 화가들도 야외 작품 활동을 위해 즐겨 찾던 곳이었다.

1873년에 완성된 <개양귀비꽃>은 아르장퇴유 주변의 풍경을 묘사한 모네의 초기작으로, 그의 또 다른 명작인 <인상, 해돋이>와 함께 이듬해인 1874년에 열린 첫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되어 새로운 미술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년,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인상주의(Impressionism)처럼 오늘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랑을 받는 미술사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전시회를 찾았던 관람객들은 마치 미완성인 듯한 모네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채를 통해 순간의 시각적 감각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이전의 정제된 아카데믹한 풍경화와 달랐다. 찰나의 순간 눈에 보이는 대로 화면에 빨간 점을 찍듯 빠르게 그린 개양귀비꽃은 자연스럽고 생기가 넘친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아르장퇴유의 광활한 들판에 서 있는 듯하다.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눈부신 풍경이 내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그래서 모네의 <개양귀비꽃>은 보고 또 보고 싶은 그림이다. 있는 그대로.

[저작권자 © HEEstoryNArt]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지하며, 허락 없이 내용 일부를 발췌/요약/편집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링크 및 SNS 공유는 허용합니다.

4 “[내가 사랑한 그림] 클로드 모네 ‘개양귀비꽃’” 댓글

  1. 윤작가님~~~
    이런 고급진 공간이 있다는게 참 감사하네요..
    요즘처럼 사회적거리가 필요한 때에 미술사 강의를 듣기위해 발품을 팔지 않아도 이런 훌륭한 글과 그림을 접할수 있어서 매우 반가워요~~~

  2. 사람마다 감상의 포인트가 다 다르겠디만…저는 에서 강아지 털이 정말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붓으로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그림 속 바람까지도 느껴졌답니다. ^^ 늘 재미있는 설명 감사합니다~

  3. 강아지풀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그림 속 바람까지 느껴지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이제 개양귀비꽃 시기는 지나가고 무더운 여름이 왔습니다. 벌써부터 내년 봄이 기다려지네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