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하얀 금으로 만든 왕의 보물 – 마이센 자기 코뿔소

  요한 고트리브 키르히너(Johann Gottlieb Kirchner, 1707-68), <코뿔소>, 1730년, 자기, 독일 마이센, 높이 67 cm; 길이 109 cm, 드레스덴 자기 컬렉션(Porzellansammlung)

지금껏 도자기를 공부하면서 방문한 박물관 중 드레스덴(Dresden) 츠빙거(Zwinger) 궁전에 있는 자기 컬렉션(Porzellansammlung)만큼 인상적이었던 곳은 없었다. 그 이유는 전시실을 가득 채운 마이센(Meissen) 자기로 만든 대형 동물 조각상 때문이다. 마치 동물원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이곳에서 왕은 사자도, 호랑이도 아닌 코뿔소다. 

드레스덴 자기 컬렉션 동물 조각상 전시실. 출처: msu-dresden.de

높이 67 cm, 길이 110 cm 달하는 이 거대한 마이센 코뿔소는 1730년 신성로마제국 작센(Sachsen)의 선제후(選帝侯)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August II, 1670-1733)의 자기 동물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아우구스트 2세 초상화. 루이 드 실베스트르, 1718년, 베를린 국립회화관

스스로 ‘자기 병(maladie de porcelaine)’을 앓고 있다고 고백한 아우구스트 2세는 평생 중국·일본 자기 수집에 열정을 쏟았다. 1709년 왕의 명령으로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1719)라는 연금술사가 중국식 경질자기(硬質瓷器, hard-paste porcelain) 제작 비법을 알아내기 전까지, 유럽은 동양 자기처럼 단단하며 하얗고 반투명한 자기를 만들 수 없었다. 

자기를 만드는 데 특별한 제조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뵈트거는 중국인들이 자기 제작에 사용한 재료, 즉 장석과 석영,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고령토가 함유된 자토(瓷土, 백토)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뵈트거가 ‘하얀 금’을 발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우구스트 2세는 드레스덴 근교 마이센에 자기제작소를 설립했다. 1710년 문을 연 제작소는 동양 자기를 훌륭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점차 독자적인 유럽 자기를 생산해 나갔다.

중국 자기 형태를 모방했지만 장식은 유럽적인 마이센 자기 복숭아 모양 주자. 1725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이센 자기에 대한 아우구스트 2세의 야망은 거대했다. 그는 기술적·예술적으로 동양 자기를 뛰어넘는 무언가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원했다. 자기로 만든 실물 크기의 동물 조각상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왕의 야심찬 선택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 유럽 군주들은 사냥과 함께 이국적인 동물과 새를 수집하는 취미생활을 즐겼다. 왕들은 서로 경쟁하듯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육장과 동물원을 지어 궁정의 화려함과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이미 드레스덴과 그 주변의 여러 왕궁 내 수련장과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었던 아우구스트 2세는 1730년 세계 최초의 자기 동물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당시 대형의 동물 조각상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동물 조각상은 17세기부터 유럽에서 유행하던 바로크식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동을 대신해 자기로 만든 조각상은 당대의 유럽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청동 동물조각 분수. 청년 시절, 아우구스트 2세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정을 방문한 뒤 드레스덴에 프랑스 바로크식 궁전과 정원을 만들었다. 출처: chateauversailles.fr

자기 동물원 프로젝트는 마이센 자기제작소의 초대 모형 제작자인 요한 고트리브 키르히너에게 맡겨졌다. 코뿔소는 아우구스트 2세가 주문한 수 백점의 동물 조각상 중 가장 어렵고 힘든 모델이었다. 지상에서 코끼리 다음으로 몸집이 큰데다가 왕이 소유한 동물원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하고 이국적인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키르히너는 독일 르네상스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유명한 목판화 속 코뿔소를 모델로 작업했다. 1515년에 그려진 판화는 같은 해 인도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져온 코뿔소에 대한 묘사와 스케치를 참고한 것으로 뒤러 역시 코뿔소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실제 모습은 아니지만 놀라운 힘이 느껴지는 뒤러의 코뿔소는 1730년 키르히너의 손을 거쳐 평면 이미지에서 입체 조각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알브레히트 뒤러, <코뿔소>, 1515년, 판화, 런던 영국박물관

대형 자기 조각상 제작은 세계 도자사의 거대한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은 일찍이 성공했지만 (원대 경덕진요 청백자 불상), 동물 조각상은 마이센이 처음이었다. 특히 코뿔소와 같이 가로 길이가 거대한 작품은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었다. 

조각상 제작 과정에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크기 때문에 전체를 한 번에 성형할 수 없어 모형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각기 따로 만든 후 접합해야 했다. 원래 모형은 현재 모습보다 훨씬 컸는데 건조하여 굽는 과정에서 크기가 1/6(약 16%)까지 줄어드는 까닭이다. 

결점없는 완성작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모형을 건조하는 데에만 세달이 걸렸으며, 적당한 습기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말려야 하는 건조 환경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 초벌 구이 후에도 크기 때문에 유약을 모형에 직접 뿌리고 붓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모형을 고온의 가마에서 굽는 일은 모험 그 자체였다. 소성 과정 동안 모형을 가마 안에 안정시키는 작업은 무엇보다 어려웠다. 금이 간 부분은 그때그때 손을 봤지만, 조각상의 무게로 큰 금이 생겨 갈라지다 못해 아예 주저앉는 경우도 발생했다.

코뿔소처럼 가로로 큰 모형은 새와 같이 세로로 놓고 굽는 모형보다 더욱 힘이 들었다. 비록 완성된 코뿔소 조각상은 실제 동물보다 작은 크기지만 처음 제작된 모형은 이보다 훨씬 컸으니 그 어려움을 짐작할 만하다.

코뿔소와 함께 거대한 몸집으로 제작이 어려웠던 ‘코끼리’ 조각상. 표면에 금이 많이 보인다. 요한 고트리브 키르히너, 1731년, 높이 60.5 cm; 길이 93.5 cm, 드레스덴 자기 컬렉션
키르히너의 조수였던 요한 요아힘 캔들러(Johann Joachim Kaendler, 1706-75)가 만든 ‘왜가리’ 조각상. 세로로 긴 모형은 가로로 긴 모형보다 가마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구울 수 있었다. 1731년, 높이 73.2 cm, 드레스덴 자기 컬렉션

아우구스트 2세는 크기뿐 아니라 색까지도 살아있는 동물·새와 똑같은 조각상을 주문했다. 그러나 1730년대 초 상회기법(유약을 발라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운 자기에 에나멜 안료로 채색한 후 800도 정도의 저온에서 다시 한번 굽는 기법)으로 거대한 조각상을 장식하기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아 포기해야 했다. 그 대신 (가마에서 구워지지 않는) 유화 물감을 사용해 채색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벗겨지면서 결국 대다수의 조각상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유화 물감으로 채색된 ‘독수리’ 조각상. 현재 머리와 날개 부분에 색이 약간 남아있다. 요한 요아힘 캔들러, 1731년경, 높이 57.5 cm,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
유화 물감으로 채색된 또 다른 ‘코뿔소’ 조각상. 손상이 심해 새롭게 채색 복원되었다. 요한 고트리브 키르히너, 1731년, 높이 68 cm, 드레스덴 자기 컬렉션

이렇게 완성된 마이센 자기 동물 조각상은 드레스덴 엘베 강가에 위치한 일본 궁전(Japanisches Palais)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1717년 아우구스트 2세가 구입한 후 줄곧 연회용으로 사용되던 일본 궁전은 수 만점에 이르는 왕의 자기 컬렉션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아우구스트 2세가 자기 동물원을 전시하려고 했던 일본 궁전. 원래 ‘네덜란드 궁전’이라 불렸던 이곳은 1717년 아우구스트 2세가 구입 후 ‘일본 궁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출처: skd.museum.com

그러나 아우구스트 2세는 살아생전 완성된 자기 동물원을 보지 못했다. 1733년 아우구스트 3세(August III, 1696-63)가 즉위 후 선왕의 뜻을 받들어 궁전 리모델링 공사를 계속 이어갔지만, 결국 아우구스트 2세의 자기 컬렉션 전시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후 일본 궁전 내 창고에 보관되어 온 동물 조각상은 18세기 말 츠빙거 궁전을 거쳐 요하네움(Johanneum)에 옮겨졌다가 20세기 초 다시 츠빙거 궁전으로 되돌아왔다. 비록 아우구스트 2세가 계획했던 자기 동물원은 일본 궁전에서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의 원대한 야망은 1962년 츠빙거 궁전에 문을 연 자기 컬렉션 전시실에서 현실화되었다.

이렇게 자기 동물원을 향한 왕의 오래된 꿈은 이루어졌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려 했던 그의 바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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