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성공한 실패 vs 실패한 성공 – 메디치 자기 ‘순례자의 물병’

<순례자의 물병>, 1580년경, 연질자기, 이탈리아 피렌체, 높이 26.4 cm, 로스엔젤레스 게티 미술관

게티 미술관이 소장한 ’순례자의 물병’은 이탈리아 메디치(Medici) 가문의 야심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16세기 후반 피렌체의 메디치 자기 공방에서 제작된 유럽 최초의 자기 중 하나로, 오늘날 60여점 밖에 남지 않은 매우 귀한 작품이다. 

‘순례자의 물병’이라는 이름은 옛 순례자들이 몸에 지니던 물병의 형태에서 유래한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이 병의 모양을 본떠서 장식적인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우르비노(Urbino)의 마욜리카(Maiolica) 도기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우르비노에서 제작된 마욜리카 <순례자의 물병>. 병의 어깨에 부착된 ‘사티로스의 얼굴(Satyr mask)’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그로테스크(grotesque) 장식이다. 1540-50년경,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마욜리카 도기를 따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제작된 형태와는 달리 병의 장식은 동양에서 영향을 받았다. 흰 바탕에 푸른 코발트(cobalt) 안료로 무늬를 그리는 기법은 중국 청화자기(靑華瓷器)를 모방한 것이다. 몸체를 장식하는 꽃과 잎사귀, 식물 덩굴 등이 어우러진 아라베스크(arabesque) 무늬는 15세기 초에 생산된 명대 청화자기를 연상케 한다.

명대 영락(永樂, 재위 1403-24) 연간에 생산된 청화자기 주자. 런던 영국박물관

중국 자기가 유럽에 소개된 이래 왕실과 귀족들은 앞을 다투어 귀하고 비싼 자기 수집에 열을 올렸다. 15세기 후반부터 메디치 가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유력 가문들 역시 경쟁하듯 중국 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590년경 메디치 컬렉션의 규모는 이미 1천점 이상에 이르렀는데, 이는 당시 유럽 최고·최다 컬렉션 중 하나였다. 

중국 자기를 향한 유럽인들의 열정은 수집에 그치지 않았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여러 궁정에서 자기를 직접 개발하고자 부단히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역부족이었다.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Francesco I,1541-87)의 후원 하에 오직 피렌체에서만 중국 청화자기와 견줄만한 도자기가 생산되는데, 이것이 바로 메디치 자기다.

그러나 메디치 자기는 중국 자기와 같은 경질자기(硬質瓷器, hard-paste porcelain)가 아니었다. 연질자기(軟質瓷器, soft-paste porcelain)라고 부르는 인공자기(artificial porcelain)로, 경질자기의 주원료인 고령토가 빠진 것이었다. 비록 중국 자기처럼 희고, 단단하며, 반투명하지는 않았지만, 외관상으로는 청화자기와 매우 흡사했다. 문헌에 따르면 자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레반트(Levant,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온 도공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메디치 자기는 터키의 이즈니크(Iznik) 도기와도 많이 닮아 있다.

메디치 자기는 중국 자기보다 이즈니크 도기 제작에 쓰인 태토의 성분과 유사하다. 자기를 장식하는 카네이션, 튤립, 팔메트 등 꽃과 식물 문양 또한 이즈니크 도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자기와 함께 이즈니크 도기는 16, 17세기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있는 수집품이었으며, 메디치 가문 역시 다수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550-60년경,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

메디치 자기는 1575년부터 1587년까지 약 12년 동안의 짧은 기간 사이에 생산되었다. 약 300여점이 18세기 초에 작성된 메디치 컬렉션 목록에 기록되었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60여점뿐이다. 

현존하는 메디치 자기는 실험실과도 같았던 공방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약간 일그러진 형태와 번지거나 희미한 푸른색 무늬 등 기술적인 결함이 여러 작품에서 나타난다. 그중에는 시험이나 실험을 뜻하는 단어 ‘prova’가 쓰여진 것도 있다. 

자기 소성에 요구되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형태가 오그라진 메디치 자기 주자.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

게티 미술관이 소장한 ‘순례자의 물병’은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균형잡힌 형태와 투명하고 흰 바탕에 그려진 선명한 푸른빛 무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메디치 자기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메디치 자기에 대한 프란체스코 1세의 자부심은 병의 굽바닥 면에 그려진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Santa Maria Del Fiore)과 글자 F(피렌체 또는 프란체스코 이름의 이니셜)에서도 드러난다. 현존하는 4점의 메디치 자기 ‘순례자의 물병’ 중 굽바닥에 그림과 글자가 시문된 것은 게티 미술관 작품이 유일하다. 

‘순례자의 물병’ 굽바닥에 그려진 피렌체의 두오모와 글자 F

1587년 프란체스코 1세의 죽음과 함께 메디치 자기 생산은 거의 중단되었다. 이후 유럽 곳곳에서 자기 제작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또 다른 자기가 등장하기까지 1백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1673년 프랑스 루앙(Rouen)에서 연질자기 제작에 성공한다. 

비록 중국 자기와 같은 경질자기를 만들지는 못했으나 메디치 자기 공방은 도전과 시련, 극복을 반복하며 연질자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럽 도자기를 탄생시켰다. 1709년 독일 마이센(Meissen)에서 경질자기가 생산된 후에도 연질자기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매력은 유럽인들을 사로잡았다.

메디치 자기. 과연 성공한 실패일까, 실패한 성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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