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83), <발코니>, 1868-69년, 캔버스에 유채, 170 x 124.5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는 첫눈에 끌리는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화면 속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발코니에 있는 세 남녀는 모두 마네와 친분이 있는 예술가들로, 맨 앞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95), 오른쪽에 서서 양산을 들고 있는 여자는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니 클라우스(Fanny Claus, 1846-77), 한가운데 서 있는 남자는 풍경화가 앙투안 기으메(Antoine Guillemet, 1841-1918)다.

어두운 실내 왼쪽에 서 있어 희미하게 보이는 이는 마네의 아내 쉬잔 렌호프(Suzanne Leenhoff, 1829-1906)가 마네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들인 레옹(Léon Leenhoff, 1852-1927)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인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건 발코니 난간과 덧문에 칠해진 초록색과 여인들이 입고 있는 흰색 드레스, 남자의 의상과 실내의 어두운 배경이 만들어 내는 강렬한 색채 대비, 그리고 이를 통해 완성된 화면의 구도다.

<발코니>는 마네가 존경하고 깊이 연구했던 스페인 화가 프린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의 <발코니의 마하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 분명하다.

프란시스코 고야, <발코니의 마하들>, 1810-12년, 캔버스에 유채, 162 x 107 cm, 개인 소장

하지만 고야의 작품 속 여인들이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소통을 하고 있는 반면, 마네의 그림 속 인물들은 말이 없다. 이곳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을 뿐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다.

모리조는 홀로 사색에 잠겨 있으며, 클라우스와 기으메는 무표정으로 개개의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세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의 교류가 없다. 화면 속에 각자 머무를 뿐이다.

<발코니>는 도대체 무엇을 그린 그림일까. 마네는 왜 이 작품을 그렸을까.

1869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된 <발코니>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네의 전작인 <올랭피아>보다 덜 충격적이지만, 여전히 전통과 관습에 벗어난 <발코니>는 당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캔버스에 유채, 130 x 190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화면 구상과 강하게 대비되는 색채의 조합도 논란거리였지만 무엇보다 마네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부재했다. 게다가 정물화처럼 표현된 화면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떨어져 있는 만큼 관람자와도 떨어져 있다.

마네는 현대 사회에서의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발코니>는 그때도 지금도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마네의 그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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