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루브르, 루브르 랑스 분관

루브르 랑스 분관 전경. © HEEstoryNArt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인 루브르 랑스(Louvre-Lens)가 문을 연지 올해로 9년째다. 분관 개관 소식을 접한 지 얼마 되지않은 듯 한데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다. 파리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 남짓 한 거리에 있지만 이곳을 직접 방문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오로지 박물관만을 보러 랑스라는 생소하고 낯선 도시를 여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7월의 어느 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찾은 랑스는 플랑드르의 정취가 남아있는 도시였다. 시내 곳곳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지만 첫인상은 붉은 벽돌의 다소 투박한 느낌이었다.

역에서 나와 이정표를 따라 30분 정도 걸으니 거대한 유리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에 있는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루브르 박물관을 상상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물론 옛스러운 풍취가 느껴지는 건축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각형의 밋밋한 형태를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일본의 유명 건축 사무소 SANAA가 설계한 유리 건축물은 채광이 좋다는 장점 이외에 뚜렷한 매력이나 개성은 부족해 보였다. 실리적인 설계지만 외관만 보면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에 걸맞는 특별한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루브르 랑스 분관은 다섯개의 사각형 건물이 이어진 형태로 유리와 알루미늄을 이용해서 지은 단층 구조다. 출처: france24.com
루브르 랑스 분관이 위치한 자리는 과거 랑스 탄광개발 9번 지구가 있던 곳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루브르 랑스 분관이 위치한 자리는 애달픈 사연이 깃든 곳이다. 과거 탄전지대였던 이곳은 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으나 전후 다시 복원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폐광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2012년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변신했다.

루브르 박물관이 파리 인근이 아닌 탄광산업 쇠퇴로 위기에 봉착한 랑스에 분관을 건립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인프라를 소외되고 외면 받는 지역으로 분산하고, ‘루브르’라는 파워 브랜드를 앞세워 지역 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개관 초 우려와는 달리 현재 랑스 분관의 관람객 수는 예상을 뛰어넘고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 내가 방문한 날이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은 관람객들로 꽤 붐볐다.

루브르 랑스 분관 중앙홀 전경. © HEEstoryNArt

루브르 랑스 분관은 총 새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대형기획전을 선보이는 특별전시실,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현대미술전시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200여 점을 전시하는 상설전시실이 모두 1층에 설치되어 있다.

특별전시는 유료지만 상설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박물관을 보러 멀리서 온 관광객을 배려한 정책일 것이다. 랑스까지 여행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왕복 차비 또한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권력의 식탁>전이 열리는 특별전시실. © HEEstoryNArt
베르나르 베네(Bernar Venet)의 설치작품이 전시된 현대미술전시실. 특별전 형식으로 운영된다. © HEEstoryNArt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200여 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된 상설전시실. © HEEstoryNArt

시간 전시실(Galerie du Temps)이라 명명된 상설전시실은 루브르 랑스 분관의 핵심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긴 직사각형의 대형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비 25m, 길이 125m에 이르는 이 거대한 공간(3000m²)에는 5000년 인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엄선된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205점이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루브르 랑스 분관의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전시 컨셉은 개관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다. 하나의 열린 공간에 시대와 장르, 문명이 교차하는 유물을 한꺼번에 전시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고대 이집트 미라부터 19세기 나폴레옹 초상화까지 루브르 박물관 소장 명품들로 채워진 이곳에서 파리 본관에서와는 다른 신선하고 색다른 관점으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칭찬할 만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인류 문명의 역사와 미술사를 함께 조망하는 자리지만 이곳에 아시아는 없다. 이 전시는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다. 물론 이슬람 세계의 유물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으나 이것이 전시의 주요 부분은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으로 구성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의 중요한 축인 아시아를 제외하고 인류 문명과 교류를 논할 수는 없지 않는가? 최근 파리 케 브랑리 박물관과 협업으로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지역의 유물들을 대여받았지만 전시품은 극소수이며 여전히 유럽에 편중되어 있다. 박물관의 거창한 기획의도와는 달리 반쪽짜리 전시같은 인상을 받은 것은 나뿐일까. 전시실 소개 패널에 전시 대상의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설명했다면 불필요한 오해나 편견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상설전시실은 유럽을 중심으로 이슬람 세계 및 아프리카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 HEEstoryNArt

상설전시실은 분관 개관 기념일인 매년 12월 4일 10여 점의 유물을 교체 전시한다고 한다. 정체되지 않는, 살아있는 전시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박물관의 자세와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박물관이 되려면 보다 균형잡힌 시각과 세계관을 확립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문명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유물들이 동등하게 전시될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시간 전시실’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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