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보는 세계 – 지도를 따라서’ 고지도를 통해 본 아시아인들의 세계관

전시기간: 2018. 05. 16 – 2018. 09. 10
전시장소: 프랑스 파리 기메 국립동양박물관

근대 이후 유럽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유럽인들은 그들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봐 왔다. 파리 기메 박물관의 특별전 ‘아시아에서 보는 세계 – 지도를 따라서 Le Monde vue d’Asie-Au fil des cartes’는 이러한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탈피해 아시아인들의 시각을 통해 본 세계를 조명한다. 아시아인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했는지, 15세기 이후 세계화 과정에 있어 아시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묻고 고찰하는 전시다.

‘아시아에서 보는 세계’특별전이 처음부터 전시로 기획된 것은 아니다. 몇년 전 프랑스의 한 역사학자와 지리학자가 이 주제에 대한 책을 쓰기로 하면서 다량의 아시아 고지도를 소장하고 있는 기메 박물관을 방문한다. 박물관은 두 학자에게 같은 주제의 전시를 제안하고 이들이 수락하면서 학계와 박물관의 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랜 연구의 성과가 2018년 특별전과 전시 카탈로그 형태의 책으로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기메 박물관은 세계 유수 박물관 중 처음으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시아 고지도 명품을 대규모로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이국적인 문헌으로 치부되어 왔던 아시아의 고지도가 예술 작품이자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료로서 첫 전시가 되는 것으로 더욱 의미가 크다.

전시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아시아 각 지역에서 제작된 지도뿐만 아니라 주제와 관련된 회화, 판화, 서적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공예품을 소개한다. 중국, 일본과 관련된 작품이 전시의 대부분을 이루지만 한국 관련 자료도 적지 않으며, 몽골과 티베트, 인도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전시의 범위는 넓고 포괄적이다.

아시아의 전통적⋅종교적 세계관과 세계지도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문제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예루살렘이, 이슬람권에서는 메카가 세계의 중심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이와 다른 세계의 중심이 존재한다. 아시아 대륙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는 히말라야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수미산(須彌山,혹은 메루산)은 아시아 종교의 우주관에서 세계 한 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산이다. 거대한 상상의 산으로, 지도상에서 지명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수미산의 모델로 여겨지는 성스러운 산이 존재하는데, 히말라야 산맥 너머 티베트 고원의 서남부에 위치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주 중심의 축인 수미산을 중심으로 태양, 달, 별이 돌고 있으며, 수미산 곳곳에 많은 신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자이나교 우주관을 나타낸 그림>, 인도 19세기, 기메 박물관. © RMN-GP-MNAAG
<메루산을 표현한 코스모그램>, 중국 청(清) 18세기, 기메 박물관. © RMN-GP-MNAAG

조선후기에 제작된 천하도(天下圖)는 중화적 세계관과 도교적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형 구도의 세계지도로서 독특한 형태와 내용을 지녀 이번 전시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천하도의 중앙대륙에는 우주의 중심인 곤륜산(崑崙山, 수미산을 지칭)과 중국이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과 안남(베트남), 인도 등 주변국의 이름이 적혀 있다. 내해(内海)에는 일본과 유구국(琉球國) 등 실재하는 나라와 중국고전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들이 함께 그려져 있으며, 환대륙(環大陸)에도 대부분 가상의 나라 이름이 씌여 있다.

<천하도天下圖>, 조선(朝鮮) 18세기, 기메 박물관. © HEEstoryNArt

권력의 상징과 도구로서의 지도

궁궐은 황권(皇權, 또는 왕권王權)국가의 중심이자 황실(또는 왕실)의 존엄과 권력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궁궐을 둘러싼 도성(都城)을 시각화한 지도는 고대부터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다. 황제(또는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도성의 상징성과 도성 내부의 지리적 내용이 자세하게 수록된 지도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권력의 도구로서 지도가 갖는 위력은 <대명지리지도大明地理之圖>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17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진 지도를 베껴 1762년 에도(江戶)시대 일본에서 제작한 대형의 화려한 채색지도인데, 명(明)나라의 광활한 영토와 행정구역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대작이다.

<대명지리지도大明地理之圖>, 일본 에도(江戸) 18세기, 기메 박물관. © RMN-GP-MNAAG

일명 ‘파란 지도(Blue Map)’라 불리는 <대청만년일통지리전도大清萬年一統地理全圖>는 1767년 황천인(黃千人, 1694-1771)이 만든 지도를 모델로 삼아 1811년에 간행된 청색 한정판이다. 현존하는 중국 지도 중 가장 아름답고 귀한 지도라고 알려져 있다. 청나라 황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청제국과 그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을 함께 보여준다.

<대청만년일통지리전도大清萬年一統地理全圖>, 중국 청(清) 1811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 RMN-GP-MNAAG

지리적인 특징보다는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하는 데 더 초점을 둔 회화에 가까운 지도들도 눈길을 끈다. <강희남순도 康熙南巡圖>는 강희제(康熙帝, 재위 1661-1722)의 남방 순행을 묘사한 그림으로 세밀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가 돋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산수화가 아닌 나라 곳곳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는 황제, 즉 중앙정권이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확립하고 제국의 영토를 관리하는 매우 정치적이고 회화성이 짙은 일종의 ‘그림지도’ 라 할 수 있다.

<강희남순도康熙南巡圖>, 왕휘(王翬, 1632-1717), 중국 청(清) 1691-93년, 기메 박물관. © RMN-GP-MNAAG

조선의 <평안감사부임도平安監司赴任圖> 또한 지도적인 요소와 회화성을 조합한 작품으로 지도와 산수화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평안감사부임도平安監司赴任圖> 조선(朝鮮) 19세기, 기메 박물관. © HEEstoryNArt

거대한 대륙의 발견: 아시아세계의 시작

서양사에서 15세기 초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인들이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해상 무역을 하던 시기를 소위 ‘대발견시대’ 또는 ‘대항해시대’라고 부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럽의 대항해가들로 ‘대발견시대’를 이끈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중심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며 사실상 ‘대발견시대’의 서막은 13세기 동양에서 열렸다.

13, 14세기 걸쳐 몽골제국은 한반도에서 흑해에 이르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이른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시대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세계로 통합해 육로를 통한 교류와 무역을 증진시키고,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54)의 동방여행을 가능케했다.

‘대발견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서양을 잇는 접점이자 통로인 이슬람 세계였다. 일찍이 한(漢)나라 때 장건(張騫, ?-기원전 114)이 서역 원정을 통해 개척한 실크로드(Silk Road)와 명나라의 무슬림 출신 정화(鄭和, 1371-1433)의 인도양 항해는 이슬람권 지리에 관한 방대한 지식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이들의 여행은 ‘아시아세계(Asia-world)’, 즉 아시아 대륙이 세계의 중심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적 세계관에 기초한 세계지도를 만드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당대부터 청대까지 세계로 수출된 중국 도자기, 기메 박물관. © HEEstoryNArt

탈중심화된 세계: 지식의 세계화와 지도의 하이브리드화

중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파한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유럽식 세계지도 모델을 중국에 전파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리치는 중국에 체류하면서 황실의 고위 관료들에게 ‘대발견시대’ 이후 축적된 유럽의 지리지식과 지도 제작기술을 전수하고, 이들과 함께 중국의 첫 서구식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리치의 세계지도는 당시 중국 지식인들의 시야를 넓혀주었으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의 면모를 파악하게 했다. 한편,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배치한 리치의 세계지도는 유럽중심주의를 탈피해 아시아와 세계를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본 것으로도 의미가 크다.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가 만든 <곤여전도坤輿全圖>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관을 반영하는 서구식 세계지도의 대표적인 예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페르비스트는 플랑드르(Flandre, 현재 벨기에) 출신 예수회 선교사로서 리치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유럽식 세계지도를 제작·간행한 인물이다.

<곤여전도坤輿全圖>, 조선(朝鮮) 1860년, 기메 박물관. © HEEstoryNArt

1674년 중국 북경에서 제작한 목판본 지도인 곤여전도는 1856년 중국 광동(廣東)에서 재판이 나왔으며, 4년 후인 1860년 조선에서도 간행되었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1860년에 조선에서 다시 찍은 판본으로 총 8폭에 이르는 대형 세계지도이다. 동서 양반구를 따로 원형으로 그려 넣고 동반구에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서반구에는 아메리카, 남극대륙은 양반구에 걸쳐 그렸다.

이와 함께 각 대륙과 국가의 자연 자원, 사람과 관습에 대한 정보를 담은 짧은 글들이 해당 지역 근처에 적혀 있다. 남극대륙 안에는 여러 대륙에 사는 실제 및 상상의 동물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바다 곳곳에는 바다동물과 항해하는 선박들이 그려져 있다.

18, 19세기에는 유럽의 다양한 세계지도가 아시아에 소개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서양식 근대 세계지도가 다량으로 제작되었다. <만국신지도萬國新地圖>는 경선과 위선을 사용하고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s projection)을 적용한 근대식 세계지도로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만국신지도萬國新地圖 >, 야마나가 젠사부로( 山中善三郎), 일본 메이지(明治) 1881년, 개인소장. © HEEstoryNArt

유럽의 팽창과 옥시덴탈리즘

16세기 이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주도로 시작된 대(對)아시아 해상무역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의 가세로 더욱 확장되었다. 유럽의 무역인,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들어오고 활동하면서, 17세기부터 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과 공예품이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현지에서 제작되고 크게 유행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팽팽한 힘의 균형 관계는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에 각국의 조계(租界)가 들어섰으며, 인도와 동남아시아도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시아에서 제작된 지도는 유럽 세력의 확장과 이들이 주도한 세계화의 진행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해현성상조계전도上海縣城廂租界全圖>, 중국 청(清) 1880년, 기메 박물관. © HEEstoryNArt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식민지 지도는 현지의 자세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어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영토 확장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국경과 하노이 지방 사이의 홍강 지도 Carte de fleuve Rouge entre la frontière chinoise et la région de Hanoï>는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 작업에 있어 현지의 지도가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 국경과 하노이 지방 사이의 홍강 지도 Carte de fleuve Rouge entre la frontière chinoise et la région de Hanoï>, 베트남 19세기, 개인소장. © RMN-GP-MNAAG

홍강(Sông Hông)은 베트남 북부 최대의 강으로, 중국 원남성에서 발원하여 베트남으로 들어가 수도인 하노이를 거쳐 통킹만으로 흐르는 강이다. 지도는 북베트남(통킹) 지역부터 시작된 식민지 정복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지도 곳곳에 표시된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는 남쪽의 안남 경계까지 진입한 프랑스군의 전진 상황을 나타낸다. 프랑스어로 쓰여있는 부분은 프랑스 군인들이 편리한 지도 사용을 위해 따로 표기한 것이며, 삼색기와 함께 1883년에서 1885년 사이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와 프랑스어가 표기된 부분. © RMN-GP-MNAAG

전시는 일본의 요코하마에(横浜絵)를 소개하면서 끝을 맺는다. 본래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요코하마는 1859년 외국인에게 항구가 개방되면서 일본의 대(對)구미 교류 창구이자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요코하마 지역의 외국인과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목판화인 요코하마에가 당시 외지의 문화에 흥미를 갖게 된 일본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다. 그중 우타가와 요시토라(歌川芳虎)의 작품처럼 실제가 아닌 상상의 풍경을 담은 재미있는 작품이 많이 있다.

<프랑스 파리>, 우타가와 요시토라(歌川芳虎), 일본 에도(江戸) 1862년, 기메 박물관. © HEEstoryNArt

전시 총평

어렸을 때부터 유럽이 중심에 있는 지도를 보고 자란 프랑스인들에게 이번 전시는 무척 혼란스럽고 곤혹스러운 듯하다. 여러 매체에서 전시를 다루는 기사나 인터뷰를 보면 이들의 호기심과 당혹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전시 기획자들 역시 이런 반응을 기대했다고 한다. 이 전시는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질은 21세기 세계화시대를 맞아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데 있다.

<아시아에서 보는 세계>전은 학구적이며 질적으로 훌륭한 전시다. 하지만 아시아의 고지도를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반면, 내용이 많아 전시 구성에 있어 조금 산만하지 않았나 싶다. 전시와 함께 출판된 책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좀 더 쉽다. 아마도 책의 내용을 전시로 바꾸는 과정에서 주제가 세분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엄밀히 말하면 카탈로그는 아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프랑스 국내 소장품)만이 아닌 전시에 나오지 않은 해외의 중요 작품까지 포함하고 있어 유용하지만, 도판 번호가 없고 작품이 글에 완전히 스며들지 않아 조금 아쉽다. 책의 저자가 역사학자와 지리학자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캡션의 내용이 책과 전시에 다른 부분이 꽤 있어 혼란스럽다. 특히 연대가 다르게 표기된 부분이 있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와 책 모두 내용면에서 알차고 수준이 매우 높다고 평가할 만하다.

전시 리뷰를 마치며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그리는 세계의 중심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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