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그릇 위에 만개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 마욜리카 접시 (ft. 이사벨라 데스테)

니콜라 다 우르비노, <문장이 그려진 접시>, 1524-25년경, 마욜리카 도기, 이탈리아 우르비노, 지름 27.5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화려하게 채색된 이 마욜리카(Maiolica,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주석유가 입혀진 채색 도기) 접시는 제작된 지 무려 500년이 된 사연 있는 그릇이다.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왔지만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선명하고 아름답다.

그릇의 주인은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 1474-1539), 만토바 후작 부인이자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술 후원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여성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 1499-1500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사벨라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녀가 그릇의 주문자는 아니다. 이 접시는 이사벨라의 딸이자 우르비노 공작 부인인 엘레오노라 곤자가(Eleonora Gonzaga, 1493-1570)가 친정엄마에게 보낸 선물이다. 

1524년 11월 15일, 엘레오노라는 이사벨라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크레덴자(credenza, 식기 진열장)에 진열할 수 있는 도기로 만든 식기세트를 보냅니다. 우리 공국의 장인들은 도기를 잘 만들기로 유명합니다. 이 세트가 각하의 마음에 드신다면 무척 기쁠거예요. 시골의 전원 생활에 어울리는 그릇이니 각하의 포르토(Porto, 만토바 교외 마을) 저택에서 사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접시는 엘레노오라가 선물한 마욜리카 식기세트 중 한 점으로, 오늘날 20여 점만이 전해진다. 현존하는 모든 그릇에는 이사벨라와 남편 두 가문(에스테가와 곤자가가)의 문장이 그려져 있으며, 미술관 소장 접시에는 이사벨라의 개인 상징물인 촛대, 복권 다발과 악보가 추가로 그려져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또 한 점의 이사벨라 데스테 마욜리카 접시. 이사벨라의 식기세트는 유럽과 북미의 박물관, 미술관에 흩어져 있다.

접시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와 판의 음악경연을 묘사하고 있다. 그릇의 왼쪽에는 아폴로가 리라를 연주하고 판과 미다스, 티몰루스는 연주를 경청하는 모습을, 오른쪽에는 미다스가 판의 피리 연주에 흡족해 하는 것을 아폴로가 나무 뒤에서 엿보고 있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림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 기원전 43 – 기원후 17/18)의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 1497년 판본에 실린 도판을 참고하여 당대 최고의 마욜리카 전문 화가 니콜라 다 우르비노(Nicola da Urbino, 1480-1538경)가 그렸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497년 판본에 실린 ‘아폴로와 판’의 음악경연 일화 관련 도판. 이사벨라의 마욜리카 식기세트에 그려진 그림 대부분은 이 책의 도판을 참고하여 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를 이상으로 삼았던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들면서 신화 이야기는 회화와 조각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자기를 비롯한 장식미술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화를 비롯해 역사,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하는 그림이 마욜리카 도기에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이야기가 그려진 것을 ‘이스토리아토(Istoriato)’ 양식이라고 한다. 주석 유약을 발라 불투명한 흰색이 된 도기 표면은 화려한 채색 그림을 그리는 데 뛰어난 캔버스와 같았다.

이사벨라의 접시(와 식기세트)는 이스토리아토 양식으로 장식된 마욜리카 가운데 예술성이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녀의 소장품이 여느 마욜리카 그릇보다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주문자도 받는 사람도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 교육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 중심의 인문주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교육의 혜택은 남성들에게만 독점되고 있던 사회였다. 왕실과 귀족계층 여성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주로 가정사와 관련된 내용에 국한되었다. 이사벨라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받은 최고의 인문주의 교육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이사벨라는 엘레오노라에게도 아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게 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이사벨라의 고전에 대한 관심은 만토바 궁 개인 스투디올로(studiolo, 서재)를 장식하는 그림에서도 잘 드러난다. 안드레아 만테냐, <파르나소스>, 1496-97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따라서 마욜리카 접시에 그려진 신화 이야기는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에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식기세트를 장식하는 신화 속 다양한 일화는 모녀가 남성 못지않은 교육을 받았으며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음을 은근하고 영리하게 보여주는 도구였다. 

이사벨라 데스테의 크레덴자를 재현한 모습. © isabelladeste.ucsc.edu

음식을 담는 그릇이지만 이사벨라의 접시가 정확히 어디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엘레오노라의 편지로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이사벨라의 포르토 저택의 크레덴자에 장식용으로 진열하다가 특별한 경우 꺼내서 식기로 썼을 것이다. 신화, 역사, 성서 등의 이야기가 풍부한 마욜리카 그릇은 식사 중 손님과의 대화 소재가 되었을 것이며, 식사를 하면서 점차 완성되는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그릇 위에도 활짝 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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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자명품순례] 그릇 위에 만개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 마욜리카 접시 (ft. 이사벨라 데스테)” 댓글

  1. 이사벨라 데스테의 화려하고 고급진 안목이 확연히 드러나는군요~~
    음식을 나누면서 마욜리카 그릇에 담겨진 그림에 대해 담소하며 풍성한 식탁을 나누었을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2. 이사벨라 데스테는 정말 대단한 여성이었던 것 같아요. 야망도 꿈도 욕심도 많았는데 르네상스 시대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아서 다 이루지 못했어요.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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