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세계사] 글로벌 이탈리아 르네상스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 <동방박사의 경배>, 1495-1505년, 48.6 x 65.6 cm, 리넨에 디스템퍼,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

고대 그리스·로마문화를 부흥시켜 사상,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대변혁을 추구했던 르네상스는 14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르네상스는 이렇듯 지역적이고 유럽적인 현상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만테냐의 수작 <동방박사의 경배>는 세계와 긴밀히 연결되고 교류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된 내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올리며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드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는 화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왼쪽의 성모 마리아가 두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있으며, 그녀 뒤에 남편인 요셉이 서 있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머리에는 성스러운 빛인 광배(光背)가 그려져 있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이국적인 차림의 동방박사 세 사람이 각자 손에 진귀한 선물을 들고 있다. 앞쪽의 머리가 벗겨지고 흰 수염이 더부룩한 카스파르(Caspar)가 황금 동전이 담긴 중국 청화자기(청화백자) 그릇을 예수에게 바치고 있으며, 뒤쪽에는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기른 멜키오르(Melchior)가 터키 향로를 들고 서 있다. 맨 오른쪽 검은 피부의 젊은 무어인 발타사르(Balthasar)는 마노(agate, 반투명하나 빛깔이 아름다운 경질석)로 만든 합(盒, 뚜껑있는 작은 그릇)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각기 다른 나이와 인종으로 그려진 동방박사는 노년, 장년, 청년 그리고 당시 알려져 있던 세 대륙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세명의 동방박사를 다양한 배경의 인물로 달리 표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 세상 모든 지역과 모든 세대에 미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이야기는 서양미술 작품, 특히 기독교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성서의 이야기를 당대의 상황과 연결지어 표현하는 유행이 있었다. 화가들은 수 백년 전의 성서 속 일화를 현대 관람자의 눈에 맞도록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15, 16세기 피렌체 공화국 최고 권력자 가문인 메디치 가의 사람들로 표현한 <동방박사의 경배>. 산드로 보티첼리, 1475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만테냐도 현대적인 요소를 넣어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렸다. 그림 속 동방박사들이 손에 들고 있는 선물은 예수 탄생 시기에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그림이 그려진 15세기 말 이탈리아 궁정의 수집가들이 열광하던 진귀한 보물이었다.

특히 카스파르가 아기 예수에게 바치는 황금 동전이 든 중국 청화자기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당시 중국 자기는 중국과 교류하던 이슬람 세계의 오스만 제국(1299-1922), 맘루크 제국(1250-1517) 술탄들이 이탈리아 궁정과 교황청에 보낸 외교 선물로서 매우 적은 수량만이 전해졌다.

16세기 이후 유럽이 중국과 직접 교역을 하면서 대량의 중국 자기가 유럽에 들어왔지만, 15세기 말 유럽에서 중국 자기는 여전히 왕실이나 권세있는 가문에서만 소유할 수 있는 희귀품이었다.

그림 속 중국 자기는 명(明)나라 황실에 납품하는 고급자기를 생산한 경덕진요(景德鎮窯) 제품으로, 그림이 그려진 시기보다 훨씬 이전인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비슷한 기형과 장식의 청화자기가 영락(永樂, 재위 1403-24) 연간의 지층에서 출토되었다. 따라서 만테냐가 그린 청화자기 그릇은 당대 생산품이 아닌 골동품이었다.

카스파르가 들고 있는 중국 청화자기 그릇
만테냐의 그림 속 중국 자기와 비슷한 명대 영락 연간에 생산된 청화자기 그릇. 런던 영국박물관

만테냐는 어떻게 당시 구하기 힘든 중국 청화자기를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이 그림을 그렸을까?

<동방박사의 경배>를 누가 주문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 북부 이탈리아의 만토바 공국를 통치하던 곤자가(Gonzaga) 가문이 후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파도바에서 활약하던 만테냐는 1460년 루도비코 3세 곤자가(Ludovico III Gonzaga, 1412-78)의 초청으로 그의 궁정화가가 되었는데, 만토바로 이주 후 거의 평생을 곤자가 가를 위해 작업하였다.

그림의 동방박사들이 예수에게 바치는 이국적인 선물은 1490년 만토바 공국에 시집 온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 1474-1539)의 개인 소장품으로 추정된다. 이사벨라 데스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여성 후원자이자 수장가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과 학식을 갖춘 여성이자 문화예술 후원자, 수장가였던 이사벨라 데스테 초상화. 티치아노, 1534-36년, 빈 미술사박물관

그녀의 사후 재산 목록에서 중국 자기를 비롯한 마노 등 경질석 수 점이 확인되었는데, 당시 본인의 소장품을 만테냐에게 직접 보여주고 작품을 그리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 물건들은 15세기 동양으로부터 이탈리아에 전해진 진귀한 것들이라 당시 이탈리아인들의 눈에 동방의 박사들이 가져 온 선물로는 최상이었을 것이다.

지구 저편의 물건이 내일 배송되는 21세기 세계화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만테냐 그림의 중국 청화자기 그릇이 보여주듯 오늘날과 같은 상업적 역량도 과학 기술도 없던 15세기, 세상은 나름 글로벌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대항해시대’를 열기 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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