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파노라마 – 프랑수아 항아리

<프랑수아 항아리>, 기원전 565년경, 흑회식 도기, 그리스 아티카, 높이 66 cm ; 지름 57 cm,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이하 고고학박물관)을 방문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프랑수아 항아리(François Vase)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다면 프랑수아 항아리는 반드시 봐야하는, 성경과도 같은 작품이다. 

먼저 고백하지면 나는 도자기를 좋아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큰 팬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도자기보다 프랑수아 항아리는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처음 본 순간 나를 압도하는 도자기는 많지 않다. 명품 중의 명품, 프랑수아 항아리는 그런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볼류트 크라테르(volute-krater) 형태의 흑회식(黑給式, black-figured) 도기인 프랑수아 항아리는 기원전 565년경 그리스 아티카(Attica, 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크라테르는 포도주와 물을 섞는 커다란 그릇을 말하는데, 2개의 손잡이가 소용돌이(volute) 모양으로 되어 있어 볼류트 크라테르라고 한다. 병의 표면에는 도공 에르고티모스(Ergotimos)와 화공 클레이티아스(Kleitias)가 함께 남긴 서명이 있다.

프랑수아 항아리 앞 뒤 표면에는 “에르고티모스가 나를 만들었고(좌), 클레이티아스가 나를 그렸다(우)”고 쓰여 있다. © smarthistory.org

그리스 도기이지만 프랑수아 항아리는 1844-45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키우시(Chiusi)에 있는 에트루리아(Etruria) 지하묘지에서 발굴되었다. 항아리의 이름은 도자기를 최초로 발견한 고고학자 알렉산드로 프랑수아(Alessandro François, 1796-1857)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으며, 현재의 모습은 발견 당시 수백 개의 파편으로 조각난 상태를 원형으로 복원한 것이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9세기 무렵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에서 성장해 로마에 흡수되기까지 약 1천년 간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영한 고대 국가다. 이들은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의 여러 도시들과 교류하면서 국제적이고 독자적인 문화를 발달시켰다. 문헌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아 여전히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있지만, 풍부한 고고학적 자료는 화려하고 번성했던 문명의 흔적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특히 귀족 무덤에서 출토된 수만 점의 그리스 도기는 풍요로웠던 그들의 삶과 문화를 엿보게 하는데, 프랑수아 병은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대체 프랑수아 항아리의 무엇이 대단한 것일까? 무엇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깨진 파편을 모아 붙인 도자기에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몸통 전면에 빼곡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그리스 신화 속 장면때문일 것이다.

흑회식 기법은 기원전 700년경 시작되어 적회식(赤會式, red-figure) 기법이 등장하는 기원전 530년경까지 유행했다. 프랑수아 항아리가 제작된 기원전 6세기 중후반은 흑회식 도기의 절정기에 해당한다. 그릇의 맨 아랫부분(굽)에 보이는 붉은색은 가마에서 항아리를 너무 일찍 꺼내 잘못 구워진 것으로, 흑회식 도기에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 HEEstoryNArt

6단으로 구획된 그릇의 적갈색 바탕에는 검은색으로 표현된 상(像, figure) 270개를 비롯해 각 인물의 정체와 장면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명문(銘文) 131개(서명 포함)가 새겨져 있다.

그중 가장 크게 묘사가 된 것은 항아리의 어깨 부분 전체에 둘러져 있는 인간 펠레우스(Peleus)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의 결혼식으로 올림푸스(Olympos) 12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이 축복하기 위해 모여드는 장면을 나타낸다.

맨 오른쪽 집 안에 신부인 테티스가 앉아 있으며 펠레우스는 밖에 서서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고 있다. 중앙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가 포도주가 든 병을 들고 있고, 맨 왼쪽에는 제우스(Zeus)와 헤라(Hera)가 전차를 타고 입장하고 있다. © HEEstoryNArt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으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Achilleus)가 태어나게 되는데, 아킬레우스는 프랑수아 항아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항아리의 A면(앞면)과 측면에는 아킬레우스와 관련된 트로이 전쟁의 여러 일화가 그려져 있다.

프랑수아 항아리의 A면(앞면) 가장 윗부분(구연부)에는 펠레우스가 칼리돈(Calydon)의 멧돼지를 사냥하는 일화가 그려졌으며, 바로 아랫부분(목)에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죽은 친구 파트로클로스(Patroklos)를 추모하기 위해 개최한 전차 경주 장면이 묘사되었다. © HEEstoryNArt
항아리의 양 측면 손잡이 부분에는 아이아스(Ajax)가 파리스(Paris)의 화살에 맞아 죽은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들고 그리스군 진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렸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비극이 극적으로 묘사된 장면이다. © HEEstoryNArt

프랑수아 항아리 B면(뒷면)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의 모험담과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를 비롯한 다른 신들의 일화로 채워져 있다.

프랑수아 항아리 B면(뒷면) 가장 윗부분(구연부)은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황소 머리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us)를 처단한 후 인신공물로 바쳐졌던 아테네 젊은 남녀들을 구해 돌아오는 장면을 나타낸다. 바로 아랫부분(목)에는 라피타이(Lapithes)족의 왕 페이리토오스(Peirithous)의 결혼 피로연에서 술에 취해 반인반마(半人半馬) 켄타우로스(Kentauros)들이 난동을 부리자 테세우스가 라피테스족과 힘을 합쳐 벌인 전투를 주제로 다뤘다. © HEEstoryNArt
프랑수아 항아리 B면(뒷면)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장면 아래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포도주를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그를 설득하여 같이 올림포스로 돌아가는 일화가 묘사되었다. 왼쪽에는 헤라가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보낸 황금옥좌에 앉았다가 포박당한 채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 HEEstoryNArt

이 밖에 스핑크스, 그리핀 등 여러 동물들의 싸움 및 피그미(Phgmy) 소인족과 두루미 사이의 대결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수많은 인물과 다양한 일화가 그려진 프랑수아 항아리는 마치 그리스 신화 이야기책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스 도기에 그리스 신화 내용이 묘사된 것은 특별하지 않지만 이처럼 복잡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은 프랑수아 항아리가 독보적이다.

이런 대작이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부장품(副葬品)으로 발견되었으나 그릇 내부에 사용 흔적이 있어 무덤 주인이 생전에 애용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프랑수아 항아리가 제작된 그리스에서는 교양있는 남성들이 ‘심포지움(symposium)’이라고 부르는 연회에서 포도주를 함께 나눠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이들은 포도주를 물에 희석해 마셨는데, 이때 사용되었던 대형의 용기가 프랑수아 항아리와 같은 크라테르다. 그릇의 표면은 신들과 영웅들의 모험담과 이야기 등 참석한 남성들의 취향에 맞는 소재로 그려졌다.

프랑수아 항아리를 장식하는 신화 속 여러 장면들 역시 이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귀족 남성상을 그리고 있다. 고결한 결혼, 성공적인 사냥,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고 의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 모두 그리스 남성에게 최고의 가치였다.

그리스 남성들이 추구했던 귀족적 가치는 에트루리아에도 전해졌다. 기원전 6세기부터 에트루리아의 도시들은 자치권을 지닌 도시 국가로 발전해 갔는데, 이 시기에 등장한 신흥 귀족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성장했다.

에트루리아 사회에서 연회는 귀족들이 자신들을 과시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위풍당당한 형태에 그리스 신화 속 장면이 가득 그려진 프랑수아 항아리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찬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프랑수아 항아리. © HEEstoryNArt

키우시의 어느 권세있는 귀족이 소유했던 프랑수아 항아리는 주인의 죽음과 함께 무덤에 묻히면서 화려했던 인생 1막을 마무리했다. 1844-45년 무덤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된 프랑수아 항아리는 1871년부터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더 화려하고, 더 성공적이고, 더 명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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