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윤씨다

“안녕하세요, 마담 X?” “안녕하세요. 저는 마담 윤이에요.” “아 네.‎.. 결혼하셨잖아요?” “네, 했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X는 제 남편 성이고, 저는 윤씨입니다.” 얼마전 은행에서 직원과 나눈 첫 대화다.

주택자금대출 신청서류 작성을 위해 남편과 찾은 은행. 예전부터 거래를 하고 있던 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으로, 사전에 필요서류를 제출하고 최종 점검을 위해 담당직원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다. 남성직원은 이미 준비해 놓은 신청서류를 내밀고 싸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싸인을 거절했다. 개인정보란에 나의 성이 아닌 남편의 성으로 표기가 된 것이다! 나의 성 윤씨는 이름 밑 ‘결혼 전 성씨’에 적혀있었다.

“왜 제 성이 남편 성으로 되어있죠? 제 성은 단 하나, 윤씨에요. 결혼 전에도 윤씨이고 지금도 윤씨이죠. 누가 제 성을 함부로 바꾸나요? 나는 허락한 적이 없는데.‎.‎. 이건 불평등하고 불법이에요.” “그렇군요.‎.. 바꿔드리드록 하겠습니다.” 남성직원은 당황해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수정을 해주었다.

결혼해도 자신 고유의 성씨를 유지하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그리고 서양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성씨를 변경할 수 있다. 1985년에 제정된 법에 의하면, 성씨를 배우자 것으로 바꾸거나 하이픈(-)을 사용해 부부 성씨 둘 다 넣을 수 있고, 자신 고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 법은 결혼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된다. 결혼을 함으로써 성씨 변경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일 뿐, 배우자 성씨로 바꾸는 것이 법적 의무사항은 결코 아니다. 내가 원할 경우에만 나의 성씨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 고유의 성을 지키거나 배우자 성과 연계시켜 사용하는 추세이지만, 결혼 시 남편 성을 따르는 것이 이곳에서는 오래된 관습으로 굳어있다. 성씨를 바꾸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성씨가 같으면 동질감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을 바꾸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는 않다. 각자 선택의 문제일 뿐.

아버지 성을 따르는 나의 성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선택과 함께 프랑스에서 부여받은 또 다른 선택권, 내 고유의 성씨를 결혼 후에도 쓸 수 있는 권리는 이 땅에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나는 윤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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