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비길리우스 에릭센 ‘거울 앞에 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

비길리우스 에릭센(Vigilius Ericksen, 1722-82), <거울 앞에 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 1762-64년경, 캔버스에 유채, 262.5 x 201.5 cm,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시 박물관

덴마크 화가 비길리우스 에릭센이 그린 <거울 앞에 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은 내가 뽑은 최고의 군주 초상화다. 은은하지만 강렬하고, 섬세하지만 대범한 이 초상화는 그림 속 주인공처럼 매력적이다.

독일 출신 별 볼일 없는 지방 귀족의 딸에서 스스로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된 여인,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재위 1762-96). 그녀는 한편의 드라마같은 인생을 살았다. 

1729년 프로이센(Preussen)에 속한 작은 공가(公家) 안할트 체르프스트(Anhalt-Zerbst) 가문의 장녀로 태어난 여제의 본명은 조피 프레데리케 아우구스테(Sophie Friederike Auguste)이다. 1744년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Елизаве́та, 재위 1741-62)의 후계자인 조카 표트르 표토르비치(Pyotr Fyodorovich, 1728-62)의 배우자로 간택되면서 러시아 땅을 처음 밟았다. 루터교에서 정교로 개종하며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라는 러시아 이름을 받은 조피는 이듬해 표트르와 결혼해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비가 된다.

표트르와의 결혼 생활은 불화의 연속이었다. 18년 동안 두 사람은 공공연하게 각자 정부를 두고 살 정도였다. 1762년 엘리자베타 여제 서거 후 표트르는 황제(표트르 3세)로 등극하자마자 더욱 노골적으로 정부와 함께 지내며 황후인 예카테리나에게는 갖은 폭언과 모욕을 일삼았다. 부부 관계는 이미 파탄이 난 상태였다. 

게다가 즉위 이후 표트르 3세가 펼친 대내외 정책은 러시아 정교회와 귀족을 비롯한 지배 계층의 반감을 사기 일쑤였다. 무능한 황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예카테리나는 1762년 7월, 표트르 3세 통치 반년 만에 황실 근위대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다.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체포하고 폐위시킨 예카테리나는 스스로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녀의 나이 서른세살이었다. 대관식은 같은 해 9월 22일 모스크바에서 거행되었다. 

이 초상화는 예카테리나가 대관식을 치루고 난 직후 그려졌다. 그림 속 여제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관람자를 향해 정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온화하고 아름답다.

관람자를 향해 정면을 보고 있는 예카테리나

하지만 부채를 쥔 여제의 오른손을 보라. 그녀의 우아한 손길은 당당하게 권력 – 황관(crown), 보주(寶珠,orb), 홀(笏, secptre) – 을 가리키고 있다. 

장식탁자 위에 놓인 황관은 뒷벽에 걸린 거울에 비쳐 두번째 황관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황관은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같은 거울에 투영된 여제의 옆모습에 향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예카테리나를 만난다. 거울 속 여제는 근엄하고 강단있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다. 

거울에 비친 예카테리나의 옆모습

자애롭고 따뜻한 여성적인 예카테리나와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적인 예카테리나. 초상화는 거울이라는 매개를 이용해 여제의 상반된 두 이미지를 한 작품 속에 세련되고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1762년 제위에 등극한 예카테리나 2세는 1796년까지 34년간 러시아를 통치했다. 독일 출신의 이방임에도 불구하고 ‘대제’ 칭호를 받은 예카테리나 2세는 긴 집권 기간 동안 러시아의 근대화 및 경제·문화 발전에 큰 힘을 쏟았다. 

하지만 빛나는 업적만큼 여제가 후세에 기억되는 건 이미지 정치에 능했던 그녀가 남긴 수많은 초상화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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