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리뷰] 은의 제국들: 은(銀)은 어떻게 세계를 만들었는가 (ft. 중국의 관점)

Empires of Silver / 배급: TVF International / 제작: Matchlight; Ei-China/Ei-Asia / 2018. 출처: tvfinternational.com

1545년 오늘날의 볼리비아 포토시(Potosí)에서 발견된 은광은 세계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는 아메리카에서 캐낸 막대한 양의 은(銀)은 사실상 세계 최초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며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중국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시대를 열었다. 

스페인 페루 부왕령(현재 볼리비아)의 포토시에서 발견된 은광산(Cerro Rico). 출처: reporteenergia.com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정복한 뒤 태평양을 넘어 필리핀까지 점령한 스페인은 16세기 세계 해상패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은의 생산과 유통, 무역으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창출함으로써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세계 경제를 주도한 나라는 스페인이 아닌, 바로 스페인으로부터 대량의 은을 유입한 중국이었다. 은은 중국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상인들에게 요구한 유일한 교역 결제 수단이었다.

영국과 중국이 합작한 3부작 다큐멘터리 <은의 제국들> (Empires of Silver, 2018)은 중국의 관점에서 본 은의 세계사다. 다큐멘터리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은광 채굴이 시작된 이후 400년 동안 세계 제국들의 운명을 좌우했던 은의 역할을 기존 유럽중심주의 세계사에서 탈피해 중국의 시선으로 재조명한다. 

16세기 유럽인들에 의해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국제 무역에서 은이 통용 화폐로 쓰이면서 경제 세계화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은이 세계 경제의 동력이 된 것은 때마침 명(明)나라의 세수(稅收)제도 개혁으로 인한 중국의 폭발적인 은 수요 때문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의 은을 집어삼키는 경제패권국으로 수 세기 동안 군림했다.

16세기 후반 명나라는 재상 장거정(張居正, 1525-82)의 주도 아래 곡식이나 특산품과 같은 현물로 내던 조세와 노역을 은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1581년 ‘일조편법(一條鞭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중국에서는 은본위제(銀本位制)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명의 세제 변화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파급력을 가져오게 된다. 

50 냥 무게의 명나라 은원보(銀元寶). 출처: shanghaimuseum.net

아메리카에서 생산된 대량의 은은 1565년부터 아시아에서의 첫 스페인 식민지 거점이자 중계무역 중심지인 마닐라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마닐라와 멕시코 아카풀코를 오가는 ‘마닐라 갈레온’ 무역선에 실려 운송된 은은 스페인 상인들이 중국 상인들과 교역하는 데 사용되었다.

스페인의 ‘마닐라 갈레온(Manila Galleon)’ 무역선. ‘Boxer Codex’에 그려진 삽화, 1590년경
필리핀 마닐라와 멕시코 아카풀코 사이를 연결하는 태평양 노선. 이 항로를 따라 은이 운송되어 ‘은의 길(Ruta de la Plata)’이라고도 불린다. 마닐라에서는 중국 상품이 실려 아메리카로 보내졌다. 출처: smarthistory.org
스페인은 아메리카 은으로 중국과 교역해 얻은 수익으로 1588년 잉글랜드 원정을 위한 무적함대 지원 자금을 충당했다. 은에 대한 중국의 높은 수요가 없었더라면 스페인 무적함대는 영국으로 항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1588년 8월 영국함대와 스페인 무적함대>, 16세기,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

당시 중국은 명실공히 세계 1위의 제조강국이었다. 중국의 비단과 자기 등을 사들인 스페인인들에게는 그러나 중국에 팔 물건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유럽과 아메리카의 그 어떤 제품도 필요치 않았다. 그들이 원한 건 오직 은뿐이었다. 이리하여 중국 상품을 탐하는 유럽 상인들이 은을 가지고 점점 아시아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17, 18세기 중국은 상업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럼의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중국 취향(시누아즈리 Chinoiserie)이 유행했으며 이들은 중국의 장식공예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소장했던 중국 은공예품>, 18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시 박물관

중국 상품에 대한 세계 시장의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중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상품을 팔아 국내에 필요한 은을 충당했다. 해외 은이 대량으로 유입됨에 따라 중국 내 상업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생산성도 높아졌다. 압도적인 제조업 생산력은 중국이 유럽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중국 중심의 세계 경제체제는 1800년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특히 18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차(茶)의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국은 엄청난 액수의 무역흑자를 거두었다. 당시 중국은 세계 유일의 차 생산국이었다.

차는 유럽이 중국에서 수입한 최대 상품으로 특별히 영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영국은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 중국으로 더 많은 은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1757년 청(清)나라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96)는 서양과의 무역 창구를 광저우(廣州) 한 곳으로 제한시켰다. 외국 상인들이 거주하고 활동하기 위한 상관들이 광저우에 설치되었으나 이들의 행동은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반드시 특허 상인인 공행(公行)을 통해야만 했다. <광저우의 외국인 상관들>, 1820년경
오병감(伍秉鑑, 1769-1843)은 청의 대외무역 특권을 독점한 광저우 공행의 중심 인물이었다. 당시 국제 정세에 밝았던 그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최대 채권자였으며 미국의 철도건설과 석탄산업 및 금융업에도 투자했던,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 <오병감 초상>, 1843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러나 19세기 초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한다. 천문학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던 영국이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한 것이다. 영국은 아편을 중국에 팔고 차, 비단, 자기 등을 구입해 가져갔다. 청조(清朝)가 금연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흡연은 갈수록 늘어났고, 아편 수입량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아편 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 경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역 흑자국에서 무역 적자국으로 반전되면서 외국으로부터 중국에 들어오던 은이 이제 밖으로 유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편전쟁이 터졌고, 결국 중국은 1842년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하면서 세계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이른바 ‘치욕의 세기’를 맞는다.

1842년 8월 29일 영국과 중국의 난징조약 체결 당시를 묘사한 그림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서양 세력 및 일본과의 전쟁에서 잇따라 패한 중국은 각종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수억 냥에 이르는 거액의 배상금을 치뤄야 했다. 외국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청나라 정부는 막대한 부채에 허덕였다.

이후 청나라가 몰락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건국되면서 최대의 경제 위기를 맞이한 중국은 화폐제도 개혁을 단행한다. 1933년 정부에서 발행하는 은화로 통일하는 폐량개원(廢兩改元)을 실시하지만 결국 열강의 압박으로 2년 후 은본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전통적으로 서구 학자들은 유럽이 아메리카 은광을 개발하면서 그것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무역을 주도하고 세계경제의 패권을 차지해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은을 매개로 세계 각 지역이 경제적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수제도 개혁으로 촉발된 중국의 강력한 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에서 사와야 하는 물건은 많은 반면 중국에 팔 물건은 거의 없던 유럽은 그 차액만큼 (중국이 요구한) 은으로 지불해야 했다. 은의 최종 수요자로서 유럽과 아메리카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중국은 16세기부터 3세기 동안 ‘세계의 공장’이자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다.

서구 학자들이 간과했던 중국을 세계무대의 중심에 놓으며 반유럽적 시각에서 접근한 <은의 제국들>은 매우 흥미롭다. 철저하게 중국의 관점으로 전개되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이로써 결과적으로 유럽중심주의 세계사의 편향을 극복하고 보완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물론 지나치게 중국 중심으로 전개되다 보니 근대 세계 경제와 무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일본이나 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어 아쉽다. 특히 일본은 아메리카와 함께 세계 주요 은 생산국으로서 16, 17세기 동안 대량의 은을 중국에 수출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또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이어 17세기 대륙간 무역 및 아시아 내의 무역을 주도했던 네덜란드에 대한 이야기도 생략되었다. 

중국 및 유럽과 아메리카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제작된 <은의 제국들>은 학술적이지만 탄탄한 구성과 고품질의 영상으로 지루하지는 않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흥미롭게도 중국 쪽에서 먼저 영국에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왜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했을까?

21세기 중국의 부활

중국은 오랜 세기 동안 세계 경제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렸다. 중국의 입장에선 19세기와 20세기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만 주도권을 내주었을 뿐이다.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선 이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다시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다큐멘터리 <은의 제국들>은 역사 속에서 중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를 상기시키며 그것을 되찾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머지않았다는 것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렇게 중국은 전 세계를 향해 21세기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 <은의 제국들>은 ‘Comment le métal blanc a façonné le monde’라는 제목으로 2020년 5월 프랑스-독일 합작 문화채널 Arte에서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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