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튤립과 중국 자기를 향한 유럽인의 열정 – 델프트 피라미드 모양 꽃병

<델프트 피라미드 모양 꽃병>, 1694년경, 주석유 도기, 네덜란드 델프트, 높이 147.2 cm, 영국 왕실 컬렉션

‘튤립 화병’이라 알려져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꽃병은 델프트(Delft) 도기 중 가장 야심차고 독특한 기형이다. 그중에서도 영국 왕실이 소장하고 있는 육각형의 대형 화병은 위엄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높이 1.5미터에 가까운 꽃병의 육중한 받침대 위로 9층의 수반(水盤)이 피라미드처럼 겹겹이 쌓아올려져 있다. 각 층 모서리에는 그로테스크한 동물 주둥이 모양의 구멍이 나 있어 꽃 한 송이씩 꽂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꽃병의 맨 꼭대기층 위에는 장식물이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없다.

받침대의 육각면에는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주보는 두 면은 윌리엄 3세(William III, 1650-1702)의 흉상이 그려져 있으며, 다른 두 면은 날개달린 천사가 앉아있는 모습이 또 다른 두 면에는 날개를 활짝 핀 공작새가 그려져 있다.

현재 런던 근교의 햄튼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에 소장되어 있는 델프트 화병은 윌리엄 3세의 왕비이자 왕과 함께 영국을 공동 통치했던 메리 2세(Mary II, 재위 1689-94) 여왕이 구입한 것이다.

<메리 2세 초상>, 1677년경, 캔버스에 유채,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제임스 2세(James II, 재위 1685-88)의 딸인 메리는 1677년 15세의 나이로 사촌인 네덜란드 공화국의 오라녜공(Willem III van Oranje)과 혼인했다. 결혼 후 네덜란드로 이주한 매리는 네덜란드 문화예술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는데, 특히 델프트 도기가 국제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7세기 이후 중국 청화자기(청화백자)를 모방해 만든 델프트 도기(陶器, earthenware)는 네덜란드 델프트 일대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말한다. 그릇 전체에 주석 유약(tin glaze)을 입혀 표면을 하얗게 만들어 그 위에 푸른빛을 내는 코발트(cobalt) 안료로 그림과 무늬를 그린 뒤 투명 유약을 발라 구워낸 것으로 ‘델프트 블루(Delft Blue; 네덜란드어: Delfts Blauw)’라고도 부른다.

17세기 유럽인들에게 중국에서 온 희고 가볍고 단단한 자기(磁器/瓷器, porcelain)는 열망의 대상이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통해 대량의 중국 청화자기가 유럽으로 들어왔지만, 명청(明青) 교체시기 중국이 혼란기를 맞이하면서 자기 생산과 수출량이 급감하게 된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수입된 중국 청화자기, 1600-24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델프트 도기는 17세기 전반 구하기 힘든 중국산 수입품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지품이었다. 비록 겉모습만 모방한 제품이었지만 델프트 도기는 중국 자기를 닮은 유럽의 도자기 중 으뜸이었고, 점차 모방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기술력과 디자인을 개발해 나갔다.

‘튤립 화병’이라는 별명의 주둥이가 달린 꽃병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튤립 화병’은 19세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1630년대 네덜란드를 휩쓴 튤립 열풍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높아진 꽃과 정원에 대한 관심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주동이가 있는 꽃병은 메리의 후원 아래 16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꽃 수집과 정원 가꾸기에 심취해 있던 메리를 위해 델프트의 도공들은 각양각색의 화병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튤립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진귀한 꽃을 꽂아 장식했으며 꽃 없이 그 자체로 감상하는 예술품이기도 했다. 

피라미드 모양 꽃병은 델프트에서 만든 주둥이가 있는 꽃병 중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기형이었다. 1.5미터가 넘는 대형 화병은 만들기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데다가 생산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피라미드 모양 꽃병의 독특한 형태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7세기 후반 당시 ‘꽃 피라미드(flower pyramid; 네덜란드어: bloempiramide)’로 불린 것으로 보아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모양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권위를 상징하는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의 형태는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Baroque) 양식이 유행하던 17세기에 유럽 왕실들이 애호하던 디자인이었다.  

피라미드 모양의 장식대에 진열되어 있는 프로이센 왕실이 수집한 도자기. 독일 오라니엔부르크 궁전(Schloss Oranienburg) 내부에 있는 ‘자기의 방’ 판화, 1695년경.

그러나 한편으로는 층층 누각으로 구성된 동양의 탑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당시 이러한 건축물 형태는 판화를 통해 네덜란드에 잘 알려져 있었다. 네덜란드인 요한 니우호프(Johan Niuhof, 1618-72)가 1665년에 출판한 중국 여행기에 묘사된 남경 보은사(報恩寺) ‘자기탑(Porcelain Pagoda)’ 삽화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탑’은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재위 1402-24)가 9층으로 쌍아올려 만든 높이 78미터의 거대한 탑으로 당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건축물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 잘 알려져 있던 중국 남경 보은사의 15세기 ‘자기탑’ 묘사 삽화

메리의 꽃과 델프트 도기에 대한 열정은 네덜란드를 떠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명예혁명으로 폐위된 제임스 2세의 뒤를 잇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온 메리는 사망 전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델프트 도기 생산을 후원했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델프트 화병이 여왕과 윌리엄 3세가 거주했던 햄튼 코트 궁전과 정원의 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작은 크기의 꽃병이 탁자 위를 장식하는 데 쓰인 반면, 피라미드 모양 꽃병과 같은 대형 화병은 봄과 여름 불을 떼지 않을 때 벽난로 앞에 놓여 어두운 실내에 화려함을 더했다.  

윌리엄과 메리가 영국에 정착한 뒤 머지않아 영국의 귀족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군주의 취향에 따라 희귀하고 이국적인 꽃들로 저택을 장식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꽃들을 전시할 델프트 화병도 유행을 하게 되는데, 오늘날 전해지는 피라미드 모양 꽃병을 비롯한 대형 화병 대다수가 영국 귀족들의 저택인 컨트리 하우스(country house)에 소장되어 있다. 델프트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그들에게 네덜란드에서 온 왕실을 향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영국 디럼(Dyrham) 저택 실내를 장식하는 델프트 화병. 출처: aronson.com

이처럼 진귀한 꽃들로 채워진 델프트 화병은 보는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꽃을 사랑한 메리 여왕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 꽃병은 영국에 새롭게 정착한 왕실의 권위와 화려함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17세기 말 윌리엄과 메리가 네덜란드를 떠난 후 ‘네덜란드 황금시대’는 점차 저물어 갔다. 하지만 델프트 도기는 영국에서 새로운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햄튼 코트 궁전의 피라미드 모양 꽃병은 바로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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