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살바도르 달리 ‘창가에 서 있는 소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89), <창가에 서 있는 소녀>, 1925년, 105 x 74.5 cm, 혼응지에 유채,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살바도르 달리의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엄밀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좋아해서 알게되고, 그래서 덩달아 애정이 생긴 그림이다. 

언제 이 그림을 처음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학생 시절이었을지 않을까 싶다.

당시에는 작품의 제목도, 누가 언제 그렸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던 때이고, 내 눈에는 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이 사뭇 쓸쓸해 보였다. 단지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이라서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대학에 진학한 후 미술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살바도르 달리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고, 그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차분하고 고요한 작품의 분위기와는 다른 화가의 모습에 참으로 놀랐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상사진, 1965년. 출처: 위키피디아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1925년에 그린 달리의 초기작이다. 20대 초반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으로,  프랑스 파리로 가 초현실주의(Surrealism) 운동에 합류하기 전에 그린 것이다.

녹아 흐물거리는 시계들이 사막에 널려 있는 풍경을 그린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 1931년, 뉴욕 현대미술관

그림의 주인공은 안나 마리아(Anna Maria), 달리의 여동생이다. 1920년대 달리는 여동생의 초상화를 수 점 그렸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안나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초상화 연작 가운데 단연 명작으로 꼽힌다.

살바도르 달리가 여동생 안나 마리아를 모델로 그린 또 다른 작품 <초상>, 1925년,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이 작품에서 달리는 창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뒷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 배경인 카다케스(Cadaqués)는 달리의 가족이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 달리가 태어난 피게레스(Figueras)에서 가까운 지중해 마을이다.

20대 초반에 그린 그림이지만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달리의 어느 작품보다 능숙한 붓질과 뛰어난 색채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작품을 지배하는 푸르스름한 회색 톤과 화면 전체에 은은하게 퍼진 빛의 조화는 평화로우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달리의 감성과 섬세함이 이처럼 짙게 묻어나는 그림이 또 있을까. 이 작품으로 달리는 화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파리로 떠난 후 다시는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에 남은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여전히 옛 추억의 진한 여운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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