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안토넬로 다 메시나 ‘수태고지의 마리아’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 1430-79), <수태고지의 마리아>, 1475년경, 목판에 유채, 45 x 34.5 cm, 팔레르모 시칠리아 지방미술관

나는 그리스도교인은 아니지만 성서화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수태고지의 마리아>는 고요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는, 나의 ‘최애’ 작품이다.

수태고지(受胎告知)는 루가의 복음서 1장 26-38절에 기록된 내용으로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聖靈)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으로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인기있는 주제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수태고지 그림에서는 마리아의 집에 찾아 온 천사 가브리엘이 왼쪽에, 마리아는 오른쪽에 묘사된다.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395-1455), <수태고지>, 1440-45년경,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그러나 메시나의 그림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없다. 그 대신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단독으로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파란색 베일로 머리를 감싼 마리아는 상반신만 표현되었으며, 그림은 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성서를 읽고 있던 마리아는 불현듯 무언가에 놀란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마리아의 반응만 보일 뿐,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천사가 온 것일까. 책장을 넘기던 마리아는 오른손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왼손으로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오른쪽을 지그시 응시하는 마리아의 시선과 표정은 복잡한 그녀의 심경을 말해주는 듯하다. 놀람, 두려움, 경외와 존경의 감정이 뒤섞인 마리아의 심리적인 혼란이 화면 바깥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가 보는 마리아는 (오른쪽 화면 바깥에 있을) 천사가 보는 마리아의 모습과 같다. 수태고지를 하는 천사의 자리에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 즉 우리가 있는 것이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그린 또 다른 <수태고지의 마리아>, 1473-74년, 뮌헨 알테 피나코텍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출신의 르네상스 화가 메시나는 이전에 그 어떤 화가도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방식으로 수태고지의 마리아를 그렸다. 천사 가브리엘을 지우면서 그는 ‘주님의 여종’이 아닌, 수태고지의 순간 ‘인간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리아의 내밀한 감정은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심오하고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한다. 차분하지만 신비로운 마리아의 얼굴과 눈빛은 잔잔하고 먹먹하게 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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