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페트루스 크리스투스 ‘어린 소녀의 초상’

페트루스 크리스투스(Petrus Christus, 1410경-72/73), <어린 소녀의 초상>, 1465-70년, 목판에 유채, 29 x 22.5 cm, 베를린 국립회화관

A4용지 크기 밖에 안 되는 작은 그림 <어린 소녀의 초상>은 신비로운 마력이 있는 대작(大作)이다. 화면 속 소녀는 그닥 예쁘지 않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오묘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이 소녀는 누구일까? 몇 살일까? 무엇을 혹은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소녀의 사회적 지위와 시대 배경을 알 수 있는 단서들은 그림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페트루스 크리스투스는 그녀를 수수께끼같은 인물로 표현했다. 묘한 눈빛과 새초롬한 표정의 소녀는 보는 이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린 소녀의 초상>은 얀 판 에이크(Jan van Eyck, 1390경-1441)를 필두로 하는 15세기 플랑드르 초상화 전통을 잇는 동시에 크리스투스만의 혁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면에서 약간 몸을 틀어 앉은 상반신 초상화에 더해진 섬세하고 정확한 묘사력은 얀 판 에이크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얀 판 에이크, <마르가레타 판 에이크 초상>, 1439년, 브뤼헤 그로닝게 미술관

그러나 장소를 알 수 없는 중립적(검은색)이고 평면적인 배경 대신 구체적인 실내를 그린 초상화는 크리스투스가 처음이었다. 그의 초상화는 그래서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림 속 소녀는 실내에 있는 벽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왼쪽에서 들어온 빛으로 인해 그녀 뒤 오른쪽 벽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크리스투스의 섬세한 붓질은 소녀를 배경만큼 실제적으로 표현했다. 검고 큰 튜브형 벨벳 모자를 쓴 소녀는 가장자리에 흰털이 달린 군청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모자의 가장자리는 금실로 정교하게 장식되었으며, 그녀의 목에는 보석이 박힌 삼단 목걸이가 걸려 있다. 화려한 차림으로 보아 소녀는 부유층 여성으로, 아마도 귀족이었을 것이다.

그림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소녀의 눈이다. 아몬드 모양의 쌍커풀이 없는 눈은 우리의 눈과 묘하게 닮아 있다. 무언가 흘겨 혹은 훑어 보는 듯한 눈초리와 약간 뽀루퉁한 입, 작은 코에 도드라진 광대뼈가 왠지 낯설지 않다.

미스테리한 소녀. 소녀의 정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너무나 모르기에 더 매력적인 그림. <어린 소녀의 초상>은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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