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제르맹앙레, 나의 도시 3] 생제르맹앙레 궁전과 정원

파리 개선문에서 RER A선을 타고 20여분 달리면 도착하는 생제르맹앙레(줄여서 생제르맹). 역에서 나오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웅장한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바로 생제르맹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생제르맹앙레 궁전(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이다.

생제르맹앙레 궁전 입구 전경. © HEEstoryNArt
생제르맹앙레 궁전. © HEEstoryNArt

생제르맹 역사의 흥망을 간직한 생제르맹 궁전은 중세 시대부터 오랫동안 프랑스 왕실의 주 거주지로서 기능해 왔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지 베르사유 궁이나 퐁텐블로 궁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이 두 궁전보다 왕궁으로서 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왕실 인물들이 태어나고, 살고, 죽은 곳이다. 비록 영화롭던 과거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건물 곳곳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중세 시대

세느강을 굽어보고 숲으로 둘러싸인 생제르맹은 중세 프랑스 왕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1124년 루이 6세(Louis VI, 재위 1108-37)가 현 궁전 자리에 사냥을 위한 작은 (별장에 가까운) 성을 지은 이래 후대의 왕들도 사냥과 휴식을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다.

하늘에서 본 생제르맹 궁전과 정원 그리고 숲. 출처: sppef.fr

생제르맹을 특별히 좋아했던 성왕(Saint Louis) 루이 9세(Louis IX, 재위 1226-70)는 성의 규모를 확장하고 1238년 예배당을 지었다. 이 예배당은 후기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인 파리의 생트 샤펠(Sainte Chapelle, 1248년)의 모델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생트 샤펠과 같은 화려함은 볼 수 없지만, 오랜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다.

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생제르맹 궁전 예배당. © MAN

생제르맹 궁전의 형태는 특이하다. 오늘날의 비대칭적인 오각형 모양은 샤를르 5세(Charles V, 재위 1364-80)가 영국과의 백전전쟁(1337-1453)으로 불타버린 성을 재건하면서 탄생했다. 성 본채와 당시 독립적인 건물이었던 예배당을 연결해 만든 것으로, 궁전의 중정에서 그 독특한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생제르맹 궁전의 오각형 모양 중정. © HEEstoryNArt

르네상스: 성에서 궁전으로

생제르맹 궁전의 전성기는 프랑스 르네상스를 이끈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재위 1515-47)부터 시작되었다. 1514년 이곳의 예배당에서 클로드 드 프랑스(Claude de France, 1499-1524)와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즉위한 프랑수아 1세는 중세의 전형적인 요새형 성을 안락한 주거용 궁전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프랑스 르네상스를 이끈 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 장 클루에, 1530년경, 파리 루브르박물관.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프랑스 왕실은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노마드 생활을 했다. 생제르맹 궁전은 프랑수아 1세가 즐겨 체재하던 곳으로, 그가 이탈리아의 화려한 왕궁을 모방하여 만든 퐁텐블로 궁전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오래 거주했던 곳이다.

1547년 프랑수아 1세가 사망하자 즉위한 앙리 2세(Henri II, 재위 1547-59)는 선왕의 계획에 따라 무도회장을 비롯한 생제르맹 궁전의 재건축 공사를 마무리했다. 1549년 완공된 이후 여러 차례 리모델링이 된 무도회장은 19세기에 프랑수아 1세 시기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곳은 예배당과 함께 생제르맹 궁전을 방문한다면 꼭 들려야 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1549년 완공된 생제르맹 궁전의 대형 무도회장. © MAN

생제르맹 궁전은 앙리 2세가 태어난 곳으로 왕이 가장 사랑하는 거처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여왕 마고(Reine Margot)로 알려진 딸 마르게리트(Marguerite, 1553-1615)와 아들인 미래의 샤를르 9세(Charles IX, 재위 1560-74)가 태어났으며,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 1519-89)와 정부 디안느 드 푸와티에(Diane de Poitiers, 1499-1566)가 같이 생활했다.

하지만 16세기 중반의 생제르맹 궁전은 늘어난 왕실 일원과 궁정인들이 함께 살기에는 이미 협소한 곳이었다. 이에 왕은 궁전에서 가깝고 세느강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두번째 궁전을 짓기로 계획한다.

생제르맹 신궁전

1557년 시작된 새로운 궁전 건축은 앙리 4세(Henri IV, 재위 1572-1610)가 이어나갔다. 이때부터 원래 있던 생제르맹 궁전을 구궁전(Château-Vieux), 새로 건축된 궁전을 신궁전(Château-Neuf)이라 불렀다. 미래의 루이 13세(Louis XIII, 1610-43)를 비롯한 앙리 4세의 모든 자녀들은 구궁전에서 생활했으며 신궁전은 앙리 4세의 별궁으로 이용되었다.

아쉽게도 현재 신궁전은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궁전이 있었던 곳은 석회암 지대로 수분을 흡수해 건물 기반이 약했다. 1777년 루이 16세(Louis XIV, 재위 1774-92)가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미래의 샤를르 10세)에게 신궁전을 하사했을 때 이미 이곳은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재건축을 하기 위해 1779년 건물을 철거하던 중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작업은 방치되었고 재건 계획은 무산되었다.

비록 당대인이 감탄을 금치 못할만큼 아름다웠다는 신궁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궁전과 정원의 모습을 담은 수 점의 그림과 판화가 남아 당시의 위용을 가늠케 한다.

1637년에 그려진 생제르맹 신궁전. © gallica.bnf.fr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1614년의 구궁전과 신궁전 전경. © RMN-Grand Palais / Agence Bulloz – BNF

특히 신궁전의 정원은 세느강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의 화려한 이탈리아식으로 조성되었다. 현재 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가는 경사로와 그로토(grotto, 인공적인 암굴)로 장식된 난간 및 정원건축 일부가 남아 있어 당시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생제르맹 신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오는 경사로와 난간. © HEEstoryNArt
신궁전 정원 내부에 지어진 작은 건물(Pavillon Sully)은 왕의 정원사가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는 개인 소유다. © HEEstoryNArt

옛 궁전의 흔적은 희미하지만 또 남아 있다. 궁전 본체 왼쪽 가장자리에 있던 왕의 예배실은 신궁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으로, 현재 고급 식당 겸 호텔인 ‘파비용 앙리 4세(Pavillon Henri IV)’가 들어서 있다.

옛 신궁전 자리에 위치한 파비용 앙리 4세. 앞쪽 돔이 있는 붉은색 건물(왕의 예배실)은 신궁전에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곳이다. © HEEstoryNArt

루이 14세와 생제르맹의 두 궁전, 그리고 정원

1638년 9월 5일, 생제르맹 신궁전에서 프랑스 왕실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루이 13세와 안느 도트리슈(Anne d’Autriche, 1601-66)가 결혼식을 올린지 23년만에 나온 이 아이는 ‘태양왕’이라 불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전제 군주 루이 14세(Louis XIV, 재위 1643-1715)다.

안느 도트리슈와 아들 루이 14세 초상화, 1640년경, 베르사유 궁전. 출처: herodote.net

신궁전 왕의 예배실에서 첫 세례를 받은 왕세자는 1643년 루이 13세가 사망하자마자 구궁전의 예배당에서 루이 14세로 즉위한다. 그리고 한동안 생제르맹을 떠나있던 왕은 1649년 1월 5일 밤 프롱드의 난을 피해 파리에서 생제르맹 구궁전으로 피신해 왔다.

1660년 루이 14세가 직접 통치를 시작하면서 생제르맹 구궁전은 다시 왕의 주궁이 되었다. 1682년 베르사유로 프랑스 궁정이 옮겨갈 때까지 이곳은 프랑스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였다. 왕은 궁전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기로 하고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과 장식을 담당한 당대 최고의 장인들에게 작업을 맡겼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17세기 화려했던 생제르맹 궁전 내부의 어떠한 장식도, 벽화도, 가구도 남아 있지 않다.

반면에 정원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만든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1700)가 이곳의 설계도 담당했다. 신궁전(현 파비용 앙리 4세) 왼쪽에 북쪽방향을 따라 조성된 ‘그랑드 테라스(Grande Terrasse)’는 그의 대표 걸작이다.

앙드레 르 노트르가 설계한 그랑드 테라스. 출처: seine-saintgermain.fr

총 길이 2.4킬로미터에 폭 30미터의 그랑드 테라스는 세느강으로부터 60미터 높은 곳에 조성된 일종의 벨베데레, 즉 전망대이자 산책로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세느강과 파리 근교 풍경은 아름답고 평온하다. 17세기 후반 당시에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분명 우리가 지금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본 그랑드 테라스와 세느강 풍경. 출처: pavillonhenri4.fr

1681년, 루이 14세는 대대적인 생제르맹 궁전 확장 공사를 단행한다. 앙리 2세 시기부터 공간 부족에 허덕이던 구궁전은 루이 14세 시기에 와서 훌쩍 불어난 궁정인 수를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682년, 공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루이 14세와 프랑스 왕실은 베르사유로 떠나고 만다.

생제르맹 궁전의 역사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된 생제르맹 궁전은 현재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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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제르맹앙레, 나의 도시 3] 생제르맹앙레 궁전과 정원” 댓글

  1. 여기 해자에 있는 고인돌들이 우리나라 고인돌이랑 무지 비슷하게 생겨서 깜짝 놀랐죠.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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