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 아뇰로 브론치노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 1503-72),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 1543년, 목판에 유채, 59 x 46 cm, 프라하 국립미술관

세상에 이보다 고귀하고 우아한 초상화가 있을까. 이탈리아 화가 아뇰로 브론치노가 그린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그림이다. 여인의 기품있는 얼굴과 자태,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 그리고 단정히 올린 고상한 머리 스타일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매혹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 내 눈을 제일 사로잡는 건 진한 분홍색 새틴 드레스와 대비되는 강렬하고 선명한 푸른빛 배경이다. 

초상화의 주인공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Eleonora di Toledo, 1519-62)는 메디치 가문의 일원으로 피렌체 공작인 코지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 1569년부터 토스카나 대공)의 부인이다. 그녀는 스페인 왕가의 혈통이자 갑부였던 나폴리 부왕(副王, Viceroy)의 딸로 코지모보다 더 지체가 높은 집안 출신이었다. 친정으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결혼 지참금과 왕실 혈통을 가져다 준 그녀 덕분에 메디치 가문은 비로소 유럽의 왕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위를 얻게 된다. 

아뇰로 브론치노, <갑옷을 입은 코지모 1세 초상>, 1545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이런 엘레오노라의 고귀함과 부유함을 드러내는 데 파랑 만큼 완벽한 색은 없었을 것이다. 초상화 뒷배경에 쓰인 짙은 파란색은 청금석(lapis lazuli)을 갈아서 만든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라는 안료다.

청금석은 수세기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채굴되던 천연석으로 당시 금보다 더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워낙 비싼 재료의 색인지라 성모 마리아 옷을 채색할 때 등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엘레오노라의 초상화가 오늘날에도 수 백년 전과 같은 아름답고 생생한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는 건 바로 광물성 안료인 울트라마린 덕택이다.

울트라마린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성모 마리아.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동방박사의 경배>, 1423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543년 초상화가 완성될 때 엘레오노라는 이미 장자를 낳아 메디치 가문의 후계를 안정시킨 후였다. 후손이 귀한 집안의 명맥을 잇게 한 그녀는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 공국 사람들에게 세상을 구원하러 온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비견될 만큼 신성하고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메디치 가의 궁정 화가였던 브론치노는 가장 값비싸고 진귀한 울트라마린 안료를 사용해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엘레오노라의 고귀함과 특별함을 표현했다. 

피렌체에 온 뒤 11명의 자녀를 낳은 엘레오노라는 메디치 가문의 번성과 피렌체 공국의 안정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완수했다. 공작 부부의 금술은 매우 좋았다고 전해지는데, 1539년 결혼식을 올린 후 엘레오노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코지모는 당시 흔하던 정부(情婦)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 속 그녀가 끼고 있는 두 개의 반지는 코시모가 준 예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암시하고 있다. 

엘레오노라는 살아생전에 수 점의 초상화를 남겼다. 이 작품은 그녀의 첫 공식 초상화이지만 나중에 그려진 여느 초상화보다 ‘비공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다소 무표정한 얼굴에 근엄한 자태로 묘사된 이후 초상화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젊은 귀부인의 앳되고 풋풋한 모습이 엿보인다.  

짙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앉아 있는 엘레오노라의 초상화. 둘째 아들인 조반니가 태어남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후계 문제는 더욱 안정되었다. 아뇰로 브론치노,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와 아들 조반니의 초상>, 1545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하지만 왠지 공허하게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나만의 느낌일까. 눈이 부실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초상화 속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는 엘레오노라.

그녀는 진정 행복했을까.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엘레오노라는 40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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