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메이드 인 저머니’ 기술과 디자인의 완벽한 조화 – 바르트만 저그

<바르트만 저그>, 1525-50년경, 소금유 석기, 독일 쾰른, 높이 26.1 cm,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경제적인 가격을 갖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바르트만 저그만큼 좋은 디자인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도자기도 없을 것이다. 

‘바르트만(Bartmann)’은 독일어로 ‘수염있는 남자’라는 뜻으로 용기 앞면 목 부분에 있는 수염난 남자 얼굴 장식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의 바르트만 저그는 아니다. 대량 생산된, 짧은 목과 둥글고 불룩한 몸체를 가진 형태의 고급 버전으로 훨씬 세밀하고 정교하게 성형되었다.

야만인을 묘사한 판화, 15세기 후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바르트만 저그의 수염난 남자 장식은 중세 북유럽 문학과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야만인(Wild man)’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바르트만 저그’는 둥글고 불룩한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장식이 비교적 단순하다. 1525-50년경,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

섬세한 주름 장식이 돋보이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남자는 우람한 체격이지만 세련된 젠틀맨의 모습이다. 머리와 수염도 옷차림과 어울리도록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다. 그러나 오른손에는 술병을, 왼손에는 유리잔을 들고 있어 익살스럽다.

주둥이에 달린 퓨터 뚜껑(pewter, 주석 합금)은 몸체 뒤쪽 고리 모양의 손잡이에 부착되어 있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레버를 눌러서 열 수 있다. 뚜껑은 남자의 멋스러운 모자가 되기도 한다.

뚜껑과 연결된 손잡이가 달린 바르트만 저그의 뒷모습

생김새는 독특하지만 주둥이와 손잡이가 있는 항아리(또는 병) 형태는 액체를 담아 따르는 용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매력적인 바르트만 저그는 탁자 위에 맥주나 와인 등 술을 담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16, 17세기 쾰른을 비롯한 라인란트(Rhineland) 지역에서 생산된 바르트만 저그는 독일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영국 등 북유럽에 대량으로 수출된 인기 상품이었다. ‘메이드 인 저머니’의 견고함과 내구성은 독일 도자기가 유럽 시장에서 환영받은 가장 큰 이유였다.

게오르크 플레겔(Georg Flegel, 1566-1638), <정물화>, 1625-30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값비싼 은제 접시, 유리컵과 함께 그려진 바르트만 저그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인기있는 상품이었다.

단단하고 흡수성이 없는 석기(炻器)로 만든 바르트만 저그는 음료 저장 용기로서 당시의 어떤 유럽 도자기보다 이상적이었다. 바르트만 저그가 세상에 나온 16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널리 쓰여진 도자기는 도기(陶瓷)였다. 하지만 굽는 온도가 낮아 내구성이 약하고 수분을 잘 흡수하는 도기는 음료를 담는 데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다. 표면에 유약을 발라 흡수율을 낮출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강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석기의 등장은 새로운 유럽 도자문화를 탄생시킨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 돌처럼 견고하고 수분을 흡수하지 않는 석기는 유럽인의 일상생활을 크게 바꿔놓았다.

유럽에서 석기가 첫 생산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14세기에는 독일 라인란트 지역의 도공들이 제작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독일 도공들의 실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가마의 온도가 정점을 찍을 때 소금을 가마 안으로 던저 넣은 것이다. 그러자 석기 표면에 유리질의 엷은 막이 생겨 광택이 나고 강도가 높아졌다. 소금유(또는 식염유, salt glaze) 발명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도자사에 중대한 공헌이었다. 

1500년경, 쾰른의 도공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한단계 더 나아갔다. 그들은 소금유를 입힌 석기 표면에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실용성에 아름다움을 더한 것이다. 수염있는 남자, ‘바르트만’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대량 생산되어 가격 경쟁력을 갖춘 바르트만 저그는 빠른 속도로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시장을 사로잡았다. 북유럽 사람들이 물보다 즐겨 마신 맥주를 담는 용도로 이보다 더할 나위 없는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을 원한다. 바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아마도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의 바르트만 저그는 한정된 수량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제작된, 소수만을 위한 특별 상품이었을 것이다.

기능성과 실용성을 갖추면서 심미성과 독창성, 거기에 경제성까지 더해진 바르트만 저그. 좋은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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