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세계사]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여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전) 조지 고워(George Gower, 1540-96년경), <아르마다 초상화>, 1588년경, 목판에 유채, 109 x 133 cm, 영국 워번 수도원

근세 이래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영국.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는 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 재위 1558-1603)의 <아르마다 초상화>는 과거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영국인의 향수를 달래주기에 충분한 그림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45년 동안은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영국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 중 하나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했다. 당시 스페인은 아르마다(Armada)라 불리는 무적함대를 내세운 강력한 해양 세력으로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무역을 선점해 번영을 누렸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적이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 1545?-96)를 후원해 영국의 해군력을 강화하고 스페인의 선박과 정착지를 공격하면서 해상 패권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새롭게 부상하는 영국을 견제해야 했던 스페인 왕 펠리페 2세(Felipe II, 재위 1556-98)는 엘리자베스 1세가 가톨릭 신봉자이자 사촌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Mary Stuart, 재위 1542-67)을 처형하자, 무적함대로 영국을 침공해 성공회 수장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끌어내리고 잉글랜드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려 했다.

스페인 무적함대에 칼레 앞바다의 화선(火船) 공격으로 승리를 이끈 영국함대 사령관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초상화, 1581년경,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아르마다 초상화>는 바로 1588년 여름 스페인과의 칼레 해전에서 영국 해군이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격퇴하고 승리한 것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다. 동시에 이 그림은 정교하게 의도적으로 연출된 권력자의 정치선전(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제작된 초상화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여왕 뒤로는 두개의 창문이 보이는데, 왼쪽 창문에는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영국 함대가 칼레 앞바다에서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오른쪽 창문에는 이후 영국 함대의 화선(火船) 공격으로 패퇴하던 스페인 함대가 폭풍을 만나 좌초하는 모습을 그려 영국이 해상 패권을 장악했음을 보여준다.

무표정한 얼굴의 여왕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지구본에 오른손을 얹고 있다. 이는 전 세계가 여왕의 영향력 아래 있으며 대영제국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메세지다. 흥미롭게도 여왕의 손가락은 미국 동부의 버지니아(Virginia)를 향하고 있는데, 버지니아는 엘리자베스 1세 때 식민지 설립이 허락된 곳으로 ‘처녀 여왕’이라 불린 엘리자베스를 따라 지명이 붙여졌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엘리자베스 여왕은 처녀 여왕의 전설을 만들고 그 이미지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여왕은 이미지 정치의 일환으로 수많은 초상화를 남겼다. 그림 곳곳에는 여왕의 권위와 승리를 나타내는 은유와 상징이 가득하다.

화려한 보석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입고 지구본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디츨리 초상화>, 1592년경,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아르마다 초상화> 속 정교한 레이스와 리본, 갖은 보석과 진주로 장식된 여왕의 호화로운 의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중 순결을 의미하는 진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이자 순결한 처녀의 여신 신씨아(Cynthia)을 상징해 여왕 자신을 단순한 처녀군주가 아닌 여신으로 이미지화 시켰다. 동시에 여왕이 앉은 의자 옆에 그려진 인어는 선원들을 유혹하고 멸망시키는 존재로, 그녀가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여왕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러프 칼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퍼지는 광선과 같이 표현되어 세상의 중심이 그녀임을 가리키며, 여왕 옆에 놓인 화려한 왕관은 그녀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비견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과. 혹자는 유럽연합(EU) 탈퇴에 찬성한 영국인의 선택이 그들에게 제국에 대한 환상이 아직 남아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같은 해, 오랫동안 프랜시스 드레이크 가문에서 소장해 온 또 다른 한 점의 <아르마다 초상화>가 아트펀드와 일반 시민들의 기부 노력으로 해외 반출을 막고 영국의 공공 재산(그리니치 퀸스 하우스 소장)이 되었다.

영국인들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아르마다 초상화>을 통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문화재 그 이상의 가치, 작금의 혼란스런 영국의 상황에 절실한 국가원수의 리더쉽과 정치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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