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여행] 아리타 도자기마을

아리타. 이름만 들어도 나를 설레이게 하는 이곳은 일본 규슈 사가현 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일본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아리타, 바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기(磁器/瓷器, porcelain)가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4월의 마지막 날, 눈부시게 화창했던 봄날, 오랫동안 고대해왔던 아리타를 방문했다.

아리타(有田)에서는 매년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 기간에 도자기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115회째를 맞은 아리타 도자기축제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일본 최대의 도자기축제이다. 가미아리타역에서 아리타역까지 약 4km에 이르는 거리에 500여 곳의 상점이 들어서고 아리타 주민 모두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긴다.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작고 조용한 마을 전역이 축제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들썩거린다.

아침 일찍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JR 특급열차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아리타에 도착했다. 내가 방문한 축제 둘째 날은 월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부터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메이지(明治) 31년인 1898년에 개통된 가미아리타역. © HEEstoryNArt

가미아리타역을 나오자마자 길가를 따라 늘어진 상점 앞에 진열된 각양각색의 예쁜 도자기들이 나를 반겼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나는 제일 먼저 이즈미야마 자석장(泉山磁石場)으로 향했다.

이삼평과 이즈미야마 자석장: 아리타 자기의 시작

아리타 자기의 역사는 17세기 초 조선인 도공(陶工) 이삼평(李參平, ?-1655)이 아리타 동부 이즈미야마(泉山)에서 자기의 원료인 고령토(高嶺土) 광산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즈미야마 자석장은 원래 하나의 산이였는데 400년간 채굴한 결과 지금과 같이 움푹 파인 모습이 되었다. 현재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채굴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즈미야마 자석장을 두눈으로 직접 보니 “400년 동안 하나의 산을 도자기로 바꾸었다”라는 말이 제대로 실감난다.

일본에서 자기의 원료인 고령토가 처음으로 발견된 아리타 이즈미야마. © HEEstoryNArt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 각 지방의 번주(藩主)들은 한반도에서 퇴각하면서 수천명에 이르는 조선의 기술자와 장인들을 납치해 데려갔다. 그중 도공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에 혹자는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삼평은 당시 아리타 일대를 다스리던 사가번(佐賀藩)의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8-1618)의 군에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왔다. 그는 자기 생산에 적합한 흙을 찾아 나베시마 번주의 영지 일대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1616년 아리타의 이즈미야마에서 자석광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 자기 역사의 시작이다.

이즈미야마 자석장 바로 근처에는 도공들과 광산의 석공들이 세운 이시바신사(石場神社)가 있다. 작은 규모의 한적한 신사인데 본전 옆 작은 목조건물에 이삼평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이삼평은 흰색 한복 차림으로 두 손을 모은 채 지긋이 눈을 감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조각상은 후손들의 얼굴 모습에서 공통점을 따 이삼평 생전 모습을 백자(白磁)로 만든 것이라 한다. 디테일이 살아있어 조각상 자체로도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이시바신사에 모셔진 도조 이삼평 백자조각상. © HEEstoryNArt

이삼평상을 보니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의 표정은 인생을 달관한 듯 편안해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는 쓸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에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해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발길을 마을로 향했다.

전통과 자연의 마을 아리타

마을 전체가 높고 푸른 산으로 둘러싸이고 물이 흐르는 아리타는 도자기와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즈미야마 자석장에서 이시바신사를 거쳐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해서 그야말로 힐링하는 기분이었다. 하늘도 푸르고 맑아 녹음이 더욱 풍성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이즈미야마 자석장에서 바라본 풍경. © HEEstoryNArt

마을 중심가에 이르기 전에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에 이끌려 길을 꺾었다. 아리타의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이나 되고 높이가 40미터터에 이르는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이다. 가을이 되면 노란색으로 곱게 물들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해보았다.

아리타 랜드마크인 천년된 은행나무. © HEEstoryNArt

은행나무를 지나면 아리타 마을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우치야마(內山) 거리가 시작된다. 우치야마는 400년 아리타 도자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일본 중요 전통적 건축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에도시대(戶時代, 1603-1867)) 후기부터 쇼와시대(昭和時代, 1926-1989) 초기에 걸쳐서 세워진 다채로운 전통 가옥과 도자기 미술관 및 상점이 줄지어 있으며, 이 거리를 중심으로 아리타 도자기축제가 열린다.

아리타 중심가인 우치야마. © HEEstoryNArt

돈바이베이(トンバイ塀)라고 불리는 가마벽돌담은 우치야마 지구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예전에 사용되었던 가마의 벽돌과 도자기 파편을 재활용해 만든 돌담으로 동네에 멋을 더한다.

우치야마 가마벽돌담 거리. © HEEstoryNArt

덴구다니 가마터와 이삼평 묘소

우치야마 지구의 북쪽 변두리에 위치한 시라카와(白川)는 이삼평이 아리타에 정착해 거주하며 가마를 열고 일본에서 최초로 자기를 생산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덴구다니(天拘谷) 가마터가 바로 이삼평 등 아리타 도자기의 창업기(創業期)에 활약한 도공들이 사용했던 가마이다. 산비탈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만든 가마로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실제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장대했다.

이삼평이 연 최초의 일본 자기 가마 덴구다니 가마터. © HEEstoryNArt

1630년 무렵부터 1660년 무렵까지 운영된 가마는 오랜 기간동안 사용하면서 개축을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총 다섯 개의 가마가 확인되었으며 1980년 일본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가마터에서 나와 마을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삼평의 묘소가 있는 공동묘지가 있다. 이삼평의 묘비는 1959년 그가 일하던 덴다구니 가마터 부근에서 윗부분이 잘려나간 채 발견되어 가까이 있는 시라카와 공동묘지에 옮겨졌다. 다른 묘쇼에 비해서 작고 초라한 그의 묘소를 보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고 이곳에 모셔진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시라카와 공동묘지에 있는 이삼평의 묘소. © HEEstoryNArt

도잔신사와 도조 이삼평 비

이삼평이 죽고 나서 3년째 되던 1658년 그를 기리는 도잔신사가 아리타 마을의 산 중턱에 세워졌다. 이곳은 오진천황(應神天皇, 일본의 제 15대 천황)과 나베시마 나오시게, 그리고 이삼평 세 사람을 모시고 있다. 입구에는 1888년에 만들어진 거대한 자기 도리이(鳥居, 신사의 경계를 표시하는 문)가 있으며, 경내에 있는 한 쌍의 고마이누(狛犬, 신사 앞에 놓인 신성한 동물 조각상), 대형 항아리, 본전의 난간 역시 모두 자기로 만든 것이다.

1658년에 세워진 이삼평을 기리는 도잔신사. © HEEstoryNArt

도잔신사의 왼쪽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조의 언덕이 나온다. 이곳에 있는 도조 이삼평 비는 1917년 아리타 도자기 300주년 기념으로 세워졌다. 매년 5월 4일에는 도조제(陶祖祭)가 열리는데, 아리타 도자기의 수호신인 이삼평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아리타 도자기 산업 발전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1917년 아리타 도자기 3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도조 이삼평 비. © HEEstoryNArt

도조의 언덕에서는 아름다운 아리타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도조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아리타 마을 전경. © HEEstoryNArt

아리타 여행을 마치면서

가미아리타역에서 시작한 나의 아리타 여행은 아리타역에서 끝이 났다. 아침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타에서의 하루는 너무 짧았다. 규슈 도자문화관을 비롯한 여러 유서깊은 가마의 도자미술관, 도자기마을 플라자 등 시간이 부족해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전통과 현재 그리고 자연이 공존하고 소통하는 아리타. 직접 와서 보고 느낀 아리타는 그동안 생각했던 것 이상의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조만간 다시 방문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후쿠오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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