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명품순례] 중세 스페인에서 꽃피운 이슬람 도자문화의 절정 – 알람브라 항아리

<알람브라 항아리>, 14세기 후반, 러스터 도기, 스페인 그라나다, 높이 134 cm, 그라나다 알람브라 박물관

높이가 1미터를 훌쩍 넘는 이 거대한 도자기는 ‘알람브라 항아리’라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십여 점의 비슷한 대형 항아리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으로 현재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알람브라 항아리’라고 불리는 이유는 한때 이들이 알람브라 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세기 항아리가 처음 생산될 때부터 지금까지 궁전 내 남아있는 완전한 예는 박물관으로 옮겨진 이 작품이 유일하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알람브라 항아리’는 이곳에 있는 항아리를 가리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알람브라 항아리. © alhambra-patronato.es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최후의 이슬람 왕조인 나스리드 왕조(Nasrid, 1238-1492)가 세운 왕궁으로 세련되고 섬세한 무어 양식(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달한 이슬람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축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항아리는 스페인의 이슬람 문명 800년이 남긴 수많은 문화유산 중 가장 경이로운 유물로 손꼽힌다.

알람브라 항아리는 어깨가 풍만하고 몸체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암포라(amphora)와 닮아 있다. 어깨 양측에 튀어나온 날개형 손잡이는 긴 목의 윗부분에 부착되어 있는데 한쪽 손잡이 부분은 손상되었다. 

몸체의 중앙에는 쿠픽체(고대 아라비아 문자 서체)로 쓰여진 명문이 한 줄의 띠로 둘러져 있으며, 그 위에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가젤(영양)이 그려져 있다. 몸체 나머지 부분은 복잡하고 다양한 아라베스크 무늬(arabesque, 꽃과 식물의 잎, 줄기 등을 도안화한 장식)를 비롯해 기하학적인 무늬와 명문이 정교하게 배합되어 있다. 

알람브라 항아리의 명문과 상단부 장식. © alhambra-patronato.es

항아리의 장식은 금빛 러스터(lustre)와 푸른빛 코발트(cobalt)에 의해 더욱 화려하게 돋보인다. 러스터는 주석을 함유하는 불투명한 흰색 도기에 은과 동 등의 금속 산화물을 사용해 그릇 표면을 금속 광택처럼 빛나게 하는 기법으로 중세 이슬람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장식기법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데다가 생산비용도 비쌌지만 찬란한 금빛 러스터 도기는 이슬람 상류층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라크 지역에서 제작된 러스터 도기 대접, 10세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9세기 이라크 지역에서 처음 생산된 러스터 도기는 이슬람 세계가 서쪽으로 확장됨에 따라 이베리아 반도에 전해졌다. 11세기에는 알 안달루스(al-Andalus, 이슬람 세력이 지배한 이베리아 반도 영토)에서도 러스터 도기가 생산되기 시작하는데, 나스리드 왕조에 이르러 본격적인 절정기를 맞는다. 거대한 크기와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알람브라 항아리가 이를 증명한다.

알람브라 항아리는 이전 그리고 동시대 어느 이슬람권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도자기였다. 1미터 이상의 대형 항아리를 제작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으며 웅대한 몸체 전면을 러스터와 코발트로 빼곡하게 장식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알람브라 궁전 내부에 남겨졌지만 항아리가 본래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암포라 형태는 지중해 연안 지방에서 주로 액체나 곡물 등을 저장하거나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알람브라 항아리는 그 크기와 무게로 보아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 같지 않다.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는 항아리가 궁전 내 벽감(壁龕, niche) 안쪽에 놓이는 장식 및 감상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알람브라 항아리’가 그라나다의 왕궁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알람브라 항아리’ 일부는 수출된 것으로 오늘날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648년 30년 전쟁이 종식된 후 프라하에서 스웨덴 군대가 전리품으로 가져온 ‘알람브라 항아리’, 14세기, 스톡홀름 국립박물관

나스리드 왕조 시기 지중해와 맞닿은 항구도시 말라가(Málaga)는 러스터 도기 생산 중심지로서 이지역 상품은 지중해 지역뿐 아니라 멀리 북유럽까지도 명성이 자자했다. ‘알람브라 항아리’ 중에서도 말라가에서 제작된 예가 있는데 이곳 항구를 통해 해외로 수출되었을 것이다. 말라가 제품은 당대 유럽에서 만들어진 그 어느 도자기보다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우수했고 국제적인 사치품으로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화려하게 번영했던 나스리드 왕조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마침내 1492년, 알람브라 궁전과 그라나다는 카스티야·아라곤 왕국의 이사벨 1세(Isabel I, 재위 1474-1504)와 페르난도 2세(Fernando II, 재위 1479-1516) ‘가톨릭 부부왕’에 의해 함락되고 만다. 그라나다는 스페인 통일에 있어 마지막 거점으로 수백 년에 걸친 레콩키스타(Reconquista, 이베리아 반도 그리스도교 세력의 국토회복운동)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나스리드 왕조에 의해 꽃피운 이슬람 도자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중세 스페인에서 절정을 맞은 러스터 도기는 유럽 국가들에 전래되면서 새로운 유럽 도자기의 성립과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세 이슬람 도자문화의 결정체이자 르네상스 유럽 도자문화의 밑거름이 된 ‘알람브라 항아리’는 바로 그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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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자명품순례] 중세 스페인에서 꽃피운 이슬람 도자문화의 절정 – 알람브라 항아리” 댓글

  1. 말라가가 러스터도기의 생산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흥미롭군요~~화려한 이슬람의 타일과도 비슷한 문양과 색깔을 쓴 알함브라 항아리를 보니 그라나다가 그리워집니다~~~
    코로나로 집콕시대이지만 눈으로라도 이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되니 기분이 한결 좋아지네요~~

  2. 저도 프랑스에서 1년 넘게 (감금에 가까운 ㅠㅠ) 집콕생활을 하고 있어요. 좋은 계절이 오니 여행이 더욱 그립습니다. 하루빨리 스페인으로 날아가 직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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